지난 10월 서울에서 열렸던 국제결혼 여성 세계대회에 참석하면서 영국에서 일어났던 놀라운 ‘토막 살해’ 사건에 대한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인 아내를 둔 영국인 남편 폴 돌튼이 부인을 죽이고 ‘전기톱으로 토막내’ 냉장고에 방치한 후 도주한 사건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남편이 과실치사(manslaughter)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여성에 대한 영국의 제도적인 인종 차별이며 명백한 인권 유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한국 여성이 그런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한인사회나 한국 정부가 비교적 조용하다는 것이다. 만일 이 한국 여성이 국제결혼의 당사자가 아니었더라면 한국 정부나 영국 한인사회의 반응이 같았을까? 만일 한국 남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더라면? 생각을 안 해 볼 수 없다.
한국을 1970년에 떠나 35년동안 미국에 살면서 미시간에서만 산 것이 벌써 30년. 이제는 미시간이 내 고향이 되어 버렸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뿌리를 내리고 정이 든 곳이 바로 미시간이다.
미국에 살아온 기간이 한국에서 산 기간보다 훨씬 많아도 나는 역시 자랑스런 한국의 딸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지난 10월에 세계대회를 참석한 약 80여명의 참석자들이 그런 자부심을 가졌다. 그들은 12개국 ? 미국, 캐나다, 일본, 한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영국, 뉴질랜드, 홍콩, 호주, 덴마크 ? 에서 참석을 하여 서울 여성 플라자에서 3박4일을 합숙해 가면서 성공리에 세계대회를 마쳤다. 미시간에서는 모두 여섯명이 참가하였다.
다양한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았지만 나에게 가장 뜻 깊었던 순간들은 참석자 여러분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생활담을 듣는 것이었다. 이것은 임상심리학자로서의 나의 직업의 탓도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생활담을 열심히 들으면서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하나하나 벗겨가면서 더 깊은 경지로 들어가 정말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때의 그 순간은 너무도 귀중한 순간이다.
국제결혼을 했다는 공통점 하나로 모인 이 여성들의 배경은 너무도 다양하다. 그러나 그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요소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 대한 차별대우이다. 누가 그들을 그렇게 차별대우를 하나? 이웃들이? 다른 미국인들이? 친척들이? 다른 한국인들이?
이광규 재외동포 이사장에 의하면 미주 한인사회 인구의 약 70%가 국제결혼을 한 자매에 의해서 초청을 받아 이민을 왔다고 한다. 유학생과 미국 회사가 초청한 숫자를 합하면 약 30%가 된다는 것이다. 국제결혼 여성들을 가장 마음 상하게 해 주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그들이 초청해서 미국에 자리잡고 사는 형제자매들이며 ‘같은 민족’이라고 하는 다른 한인들이다. 한국은 단일 민족 사상을 외치면서 타 민족을 배타했으며 타 민족과 함께 공존하는 것을 아직도 배우지 못했다.
국제화 시대에 진입하였다고 외치면서 경제적으로는 국제무대에서 참여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사회적으로는 아직도 국제결혼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편견으로 말미암아 한인교회에서나 한인사회에서 많은 국제결혼 여성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고 소외감, 부당함을 느끼면서 억울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이러한 편견을 고치려면 먼저 국제결혼 여성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국제결혼 여성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무엇을 먹으며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하고 남편과의 관계는 어떠할까? 그들의 교육수준은? 그들의 사회생활은? 한인사회가 지금부터라도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한다.
박혜숙
심리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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