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신 작 ‘나팔’ (종이에 크레파스와 수채, 54.7×39.4cm·2003).
인간미와 자연의 순수함 화폭 가득
김창식<샌호제 주립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지난 주말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화가로 거듭난 박혜신씨의 초대전 ‘내 친구들’이 열렸다. 화려하지 않지만 가슴 뭉클하고 정감 있는 인간미와 자연의 순수함의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낸 시화적 표현으로써의 의미가 더욱 깊은 행사이다. 그래서 그녀의 이번 전시는 여타의 일상적인 미술 작품전이 아닌, 말 그대로 가슴으로 말하는 작가와의 미적 대화를 느끼고 부딪치는 잔치 한마당이라 생각한다.
바람에 춤을 추는 흥겨운 색종이들의 합창 같은 느낌을 주는 박혜신씨의 한국 전시회 소책자의 표지그림 ‘바람(2003)’을 보는 순간 거침없이 그어 내려간 다소 다듬어 지지 않은 듯한 획의 맛이 묘하게 가슴에 파고든다. 형형색색의 나뭇잎들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생명의 기가 솟구쳐 오르는 듯한 획들의 합창으로 어우러진 나무기둥의 가지들과 균형을 이루는 반구상, 추상화의 매력을 돋보이고 있다.
같은 해에 완성된 ‘푸른 강’이라는 작품은 상당히 무거운 톤의 음영의 교차가 오가는 가운데 절제된 하이라이트가 묘한 대조를 이루는 특이한 작품이다. 단순하고 절제된 선과 형상은 군더더기 없는 단순미의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화면이 상하로 나뉘어 수면에 투영된 하늘 풍경은 바람의 흐름을 표현한 듯 선과 질감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고, 수평선 아래는 유유하고 잠잠한 수면의 적막함을 파스텔화 특유의 문지르기 효과로 그 대조적 균형을 잘 표현하는 재치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또 하나 나의 관심을 끌어낸 작품은 ‘코스모스’로 화사한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정겨움이 가득한 파스텔화다. 앞의 두 그림이 강한 실루엣과 음영의 대비를 통한 작가의 삶에 대한 역경을 은연중에 반영했다면, 이 작품은 온화하고 정겹고 부드러운 여성미와 절망으로부터 헤쳐 나온 아름다운 세상과 하나가 된 혜신씨의 환희를 그려낸 듯 하다.
그녀는 자신의 장애를 통하여 오히려 미쳐 깨닫지 못했던 숨겨진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새롭게 자신만의 세상을 화폭에 재창조할 수 있는 기쁨을 발견하게 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더욱더 감사한 것은 그렇게 지나온 발자국 옆에는 동행하여 온 많은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덕, 그리고 인내가 함께 하였음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한다. 예술 작품이 단순한 광학적 복제물인 일상적인 전사(사진 복제를 통한 묘사)와 다른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삶, 숨결, 그리고 혼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학습장애라는 부족함이 있음에도 자연을 자신의 친구라 부르며,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 세계를 느낌 그대로 그려내는 박혜신의 작품을 통하여 세상에 길들여지고, 부족함의 미학을 알지 못하며, 최고지상주의를 지향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금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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