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2
인도를 가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처음의 가시방석 같았던 생활이 점점 푹신한 소파처럼 느껴지고 그냥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어느날 문득 이러다 나도 별 수 없이 체념하고 은퇴할 날만을 손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뒤늦게 나는 반전과 변화가 무상했던 내 인생의 전반전을 되돌아보며 때늦은 후회도 했고 지금은 하프타임이라고 굳이 우기면서 전반전의 약세를 후반전에라도 만회하고 싶었다.
친구의 출장에 맞추어 인도의 수도인 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 공항의 수많은 낯선 사람들 속에 묻혀 있던 오지랖 넓은 그녀와 반가운 해후를 했다. 무질서와 혼돈 그 자체라던 인도에 도착해보니 무지막지할 것 같았던 더위는커녕 딱 알맞는 11월의 날씨 덕택에 나는 헐렁한 옷을 입은 것처럼 인도에서의 첫날을 기분좋게 시작했다.
도로인지 인도인지 구분도 안가고 일방 통행인지 쌍방 통행인지도 정확치 않고 ‘대충 그까짓 것’ 알아서 달리면 되는 도로 상황은 건널목도 없이 무질서하게 자전거, 모터사이클, 릭샤, 승용차와 버스 모두 한데 어우러져 연신 빵빵대며 내지르는 무질서함 속에서 그들만의 무언의 질서가 있는 듯 잘도 헤쳐나간다. 거리를 어슬렁대는 버펄로는 배째라 버티며 한가하게 시내를 활보하고 사람들은 알아서 피해 다니며 따로 신호등이 필요 없다. 소가 나타나면 속도를 줄이고 서야한다. 소가 신호등이다.
친구와 처음 이틀을 델리에서 함께 지내고 삼일째 되는 날부터는 혼자서 바라나시, 사르나트, 카쥬라호, 오르차 그리고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를 들러볼 계획을 세웠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드는 뉴델리역에서 바라나시까지 가는 밤기차를 이틀 전 예약하고 당일 저녁 7시30분 바라나시까지 13시간 걸리는 2등석 4인용 침대칸 야간 열차에 올랐다. 내 옆에는 네덜란드에서 온 부부가, 윗 침대는 일본 할아버지가, 주변엔 일본 사람들이 단체 관광을 온 모양이다. 천장에 달린 구식 선풍기가 소리를 내며 제멋대로 돌아가고 통로 사이로 연신 음료수와 간식을 팔러 다니는 사람들로 붐빈다.
인도의 열차는 대중이 이용하는 교통 수단이라 당국의 외국인을 위한 보안 때문인지 시설면에서나 안전 문제에 있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안전했으며 시설 역시도 외국인을 위한 예약이나 안내부스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별 어려움 없이 다녔다.
기차는 정시에 바라나시를 향해 서서히 움직인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등석의 기차 칸 사이에는 직원들이 지키고 있어 위험하지 않았고 커튼으로 각 칸을 막아서 나름의 질서가 있다. 나는 고리로 된 자물통으로 짐을 침대다리에 묶고 초저녁에 받아서 밀쳐둔 침대시트, 담요 그리고 베개를 밤이 되자 찬기운이 들면서 할 수 없이 끌어다가 덮고 잘 준비를 한다. 불안해서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던 2등석 야간 열차는 생각보다 편했는 지 금새 스르르 잠이 든다.
창문 밖으로 어스름 해가 뜨기 시작하니 역무원이 전날 밤 미리 주문해 놓은 블랙티를 보온병에 담아 가져다 준다. 창밖으로 집집마다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오르는 한가한 농촌 풍경에 취해 차를 마시는 마음은 여행의 지루함과 피곤함을 씻어주기에 충분하다. 옆에 자리한 일본 아줌마는 자기가 담갔다는 매실 장아찌를 하나 건네준다. 밤새 텁텁해진 입속을 시큼 새큼한 매실이 아침의 생기를 돋운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매순간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주워들은 철학자와 사기꾼이 득실거리고 카레가 없다는 이 나라에 대한 궁금증이 한꺼번에 몰려들지만 나는 내가 아는 인도를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씩 벗겨갈 것이다. 내 보따리 구석에 3분짜장, 3분카레, 컵라면과 커피믹스를 만지작거리며 돌아가면 인도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질 학생과 부모들을 떠올리며 나는 싱싱 교육 현장을 향해 머리를 쓱 디밀고 있다.
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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