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에게 2005년은 분노할 사건들이 많은 한 해였다. 그 클라이맥스는 연말에 황우석 박사가 민족의 영웅에서 과학적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참담한 과정이었다.
군사독재를 종식 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라던 정권이 10년간 국민에 대한 도청이 진행됐다는 사실도 2005년에 폭로됐다. 그 수사가 큰 고기를 풀어주고 도청 비밀을 보도한 기자를 기소하여 평형성 없이 귀결된 것도 2005년 연말이다. 유신독재 때 조작되어 젊은이들을 사형한 인혁당 사건의 진상도 이해 연말에 규명됐다.
개혁 정권을 자처하는 우리당 국회가 사립학교법을 반세기전 자유당 때 발상된 국회의 날치기 통과로 입법화시킨 것도 이해 연말이다. WTO가 회의가 열리는 홍콩까지 몰려가서 폭력 시위를 하여 1천여명이 구금된 것도 이해 연말이다.
그런 사리에 어긋나는 일들이 한 국가사회에서 이처럼 연속으로 터진다는 것도 기이하지만 그런 현실이 연속되는데도 사회가 평상 상태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신기하다. 사람들이 너무 속임을 당하고 분통 터질 일이 많아서 TV 드라마처럼 현실감을 느끼기를 단념한 때문일까? 그러나 아예 현실감을 포기한 것 같지는 않다.
황우석 교수의 행위에 대해서는 후속조치를 하는 여러 액터들 중에 누구보다도 젊은 과학자들이 국내외에서 성토하며 나섰다. 쌀 수입 개방에 대해서는 시위대가 홍콩까지 가서 세계적 첨단의 데모 기술을 발휘하며 분노를 폭발했다.
도청 비리와 인혁당 조작에 국민의 분노가 초점을 잡거나 에너지를 동원하지 못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황우석 교수 드라마에서 진실과 허위가 엎치락뒤치락 게임을 벌이는데 정신집중을 하느라고 정치적인 사건에 분노를 느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유식한 대화에 끼여들기를 좋아하는 국민들이 과학 용어들을 암기하느라고 분주해서 분노의 정서에는 대응할 두뇌 기억용량이 부족한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전공학 드라마가 “단군 이후 최대의 민족 영웅” 황우석 교수의 추락으로 클라이맥스 이른 커튼 뒤에서 도청 회오리바람을 모면한 양김 전직 대통령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됐다.
일반 민중은 흥미 있고 유식한 대형 드라마에 홀려 정치적 속임을 당하는 분노 정서를 흥미 정서로 바꿔치기하고 있다. 분노 처리방법의 첫째는 생생한 공격 분노 정서를 즉각 반응행위로 옮겨 분노를 초래한 상대와 마찰로 시작해서 충돌로 에스컬레이트 한다. 이런 분노가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정치문화를 성격 지은 것이다. 둘째는 분노의 원천에 대한 협조를 회피하는 피동적 공격 정서로 변질시켜 지속하는 것이다. 부당 대우를 당한 종업원의 태업 행위나 국민의 준법 기피가 이런 것이다.
셋째 유형은 분노의 원천에 대응할 자기의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분노의 정서를 자신과 그 원천에 대한 원망으로 전환하여 자기 내면에 억압한다. 이것이 한(恨)으로 품기지만 기회가 되면 생생한 분노의 정서로 공개적 공격 정서로 변환된다. 홍콩에서의 농민 폭력시위가 이런 것이다.
한국 문화에서는 생생한 분노 정서의 표출에 공공 이익을 표방할 경우 정의감이라는 레벨을 붙여 가치화 한다. 한편으로는 약한 자들의 경우 분노를 억압하여 한으로 간직하는 것을 미화한다. 그런 이중가치는 억압된 한의 정서가 생생한 분노로 부활하여 정의감으로 폭발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2005년에 분노를 느끼지 못하도록 기만된 정서나 억압된 분노 정서는 다시 표출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2000년 월드 서베이에 의하면 한국은 파업이나 정치적 저항시위를 할 잠재력이 세계 81개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분노가 많은 한국에는 축적된 분노를 근본적으로 관리하는 개인과 집단의 훈련이 필요하다. 이것은 분규가 잦은 재미 동포사회의 단체들이나 교회에서도 그렇다.
이윤모
일리노이주 인권국
선임연구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