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쉽게 사람을 나눈다. 사람을 나눌 때에는 남녀노소라는 기본적인 나뉨서부터 거의가 다 사회 속에서의 가치를 구분하는 나뉨이 된다. 흑인 백인, 동양인 서양인, 양반 상놈,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부자와 가난뱅이, 유식한 사람 무식한 사람, 수준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등등...사람
은 세세하게 각계각층으로 나뉘어 진다.
황우석 뒷 배경에 대한 구구절절한 온갖 이야기들 중에 옛 계급의식인 사농공사(士農工商)중 ‘공’학자와 ‘사’학자의 갈등이라고 까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는 사람을 차별한다. ‘마틴 루터 킹 데이’를 지내며 나부터도 얼마나 우리가 흑인을 차별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봤다. TV뉴스에 비인간적인 범죄의 얼굴은 거의가 흑인이고, 내 주변에
서도 그들을 차별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한 인간이 ‘인간평등’을 논할 때는 바로 자기가 차별을 당할 때뿐이지 자기가 남보다 월등하다고 느낄 때에도 나서서 인간평등을 부르짖을까? 킹 목사가 흑인이 아니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남을 위한 배려’라는 숭고
한 이유를 내세우긴 해도, 내가 여기서 에티켓과 매너를 부르짖는 이유조차도 실은 내가 포함되어있는 한국 사람이 남에게 차별받을까 걱정하는 그 본능이 깔려 있는 게 아닐까 자성(自省)해본다.
그러나 깔끔한 옷을 입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드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과 지저분한 옷을 입고 떠들어대며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놓고 그 누가 차별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이 사회에 존재하는 한은, 시대와 지역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해도 ‘인간차별’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는 것을 차라리 빨리 긍정하고, 내가 나서서 인간차별 반대 운동을 하지 않는 한, 차별받는다고 찡찡거리지 말고 먼저 자기가 속해있는 집단 속에서 자기의 모습을 가늠해보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지금 이 사회는 ‘사농공상’ 정도가 아닌 훨씬 많은 기준과 수준으로 사람을 나누고 있다. 그래도 방법은 단 한 가지, 어느 경우이서건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착각은 자유라고하나, 착각하면 자기만 손해 본다. 자기 수준이 어느 정도인줄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일
단 현재 보다 낳은 삶으로의 방향이라도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지금 당장 나의 지식과 나의 교양과 나의 인격의 현재 수준에 대해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겠다. 결과적으로 그 길만이 우리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자주 쓰는 말, “나를 무시 한다”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는, 아니 그 이전에 처음부터 아예 무시를 당하지 않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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