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율 절충않고 美요구 그대로 수용…정부 정치외교적 파급효과도 중요
한국영화 경쟁력 향상도 감안한듯…농업·자동차도 양보하나 우려 제기
영화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절반으로 축소키로 결정한 것은 전적으로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이다. 여기엔 스크린쿼터에 의존해야 만큼 국내 영화산업의 경쟁력이 허약치 않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가장 궁금한 대목은 ‘정부는 왜 협상 개시도 하기 전에 스크린쿼터 카드를 내줬나’하는 점이다. 또 ‘스크린쿼터 비율을 30% 혹은 25%로 절충하지 않고 왜 미국측 요구인 20%를 그대로 수용했나’하는 점도 의아한 부분이다.
재정경제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스크린쿼터는 더 이상 절충의 여지가 없었다. 20%를 받아들이고 FTA협상을 할 것이냐, 아니면 20%를 거부하고 FTA를 포기할 것이냐의 선택만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나 통상 당국의 눈엔 스크린쿼터 축소가 무역자유화에 대한 한국정부의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측은 김대중 정부 시절 한ㆍ미 정상 간 투자협정(BIT) 체결을 약속해놓고도 스크린쿼터 문제로 좌초됐던 경험 등을 들어, “FTA협상 테이블에 앉으려면 스크린쿼터 문제를 끝내놓고 오라”고 우리정부에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로 인한 영화계의 저항과 지방선거에 미칠 정치적 악영향도 부담스럽지만 정부는 이 보다 미국과 FTA협상이 더 시급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사실 미국 내 보호주의 강화기류를 감안할 때, 미 행정부에게 부여된 무역증진권한(TPA)이 내년 6월말 종료되면 더 이상 다른 나라와 FTA추진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미 행정부는 FTA서명 90일전 협상결과를 의회에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신규협정에 관한 협상은 내년 3월말까지 모두 끝내야 한다. 한미 양국이 협상할 수 있는 시간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셈이다.
사실 FTA에 관한 한 미국보다는 우리쪽이 더 절실하다. 한 정부관계자는 “FTA가 가져다 줄 교역신장 고용창출 투자유치 같은 경제적 효과 못지않게 정치외교적 효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군사외교적 현안과 미래관계 설정을 놓고 한ㆍ미간 파열음이 종종 노출되는 상황에서 경제적 우방관계의 최고 단계인 FTA 체결은 소원해진 양국 동맹관계를 조금이라도 근접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다. 이런 정치경제적 함의를 갖고 있는 한ㆍ미 FTA성사를 위해선 스크린쿼터 양보는 불가피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스크린쿼터가 축소돼도 현재의 운용실태나 한국영화 경쟁력을 감안할 때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현 의무상영일수는 146일이지만 경감 조항 등을 감안하면 실제론 106일인 만큼 73일로 줄어들어도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별도 지원대책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큰 걸림돌이 제거된 만큼 내달 시작될 한ㆍ미 FTA협상은 상당히 속도감 있게 진행될 전망이다. 문제는 협상이 결렬됐을 경우다. 스크린쿼터 말고도 농업 자동차 세금 등 쟁점은 많다. 협상시한 1년 안에 타결을 짓지 못해 한ㆍ미 FTA가 무산될 경우, 스크린쿼터만 내준 결과가 된다. 정부로선 어떻든 FTA타결을 위해 총력을 다해야 할 입장이다. “결국 다른 부문에서도 스크린쿼터처럼 양보적 자세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맞서 26일서울 중구 한국영화감독협회 시사실에서 열린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 대책위원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영화배우 안성기씨가 눈을 감은채고뇌에 잠겨있다. /고영권기자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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