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텀 주얼리 디자이너 권영란(사진) 실장은 가난한 고학생에서 패션을 리드하는 중저가 커스텀 주얼리 업계의 선두주자 ‘우리 트레이딩’의 총책임자가 되기까지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남다른 각오로 일했다. 뉴저지 노스베일에 소재한 우리 트레이딩(OORI Trading, INC.)은 30~40대 백인 마켓을 겨냥, 미국과 남미 600여 도매 업체에 커스텀 주얼리를 판매하는 한인 업체.
개발된 디자인은 중국, 인도, 필리핀 등 동남아 공장에서 생산되어 들여온다.중저가 커스텀 주얼리는 유행에 민감하고 시장에 따라 고객들의 취향도 달라 시장조사에서 디자인 개발, 생산 관리에 이르기까지 전문화된 시스템이 뒤따르지 않으면 금방 뒤쳐질 수 있는 분야이다.
우리 트레이딩이 한인 업체들끼리도 경쟁이 치열한 중저가 커스텀 주얼리 시장을 장악하기까지 권씨는 지난 8년이란 세월 동안 회사와 함께 성장했다.그녀는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화가가 되려는 꿈을 접고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취업을 해야 했고 지방 국세청에서 몇 년간 근무 하다 스물여섯 늦은 나이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홍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섬유미술을 전공 후 한동안 설치작가로 활동하다 결혼과 함께 유학생인 남편을 따라 1997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낯설고 물선 미국 땅에서 남편 뒷바라지 하랴 아이를 키우는 와중에 새로운 도전을 위해 우리 트레이딩 계열 ‘모아 인터내셔널’에 커스텀 주얼리 디자이너로 입사했고 4년전 우리 트레이딩으로 자리를 옮겼다.
권씨는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전문화된 시스템만이 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회사를 설득, 전문 인력과 디자인 개발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끌어냈고 전문 디자이너 7명을 둔 체계화된 디자인팀을 구성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사장이 디자인, 생산, 관리 등을 모두 챙기는 한인 업계의 관례를 깨고 디자인팀을 분리시켜 집중 투자하도록 만들었다.생산제품을 꼼꼼히 챙기다보면 공장이 해외에 있다 보니 시차 관계로 밤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어야 해 밤낮없이 일을 했다.
디자인 개발에서 생산 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을 총책임지는 그녀의 업무는 우선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시장 조사 과정을 거쳐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고 제품을 생산하기 까지 그녀의 손이 안거치는 곳이 없다.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상사로 통하는 그녀는 부하직원들에게는 다소 엄격하게 보일 수 있으나 개인의 능력을 가장 우선시하는 진보적 상사이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 부족해 미안하지만 어린 남매는 일하는 엄마를 이해할 정도로 제법 어른스럽다고. 해당 업계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회사의 실장이란 중책을 맡기까지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여자이기에 갖는 핸디캡을 버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제 회사 규모도 커져 인사관리까지 담당하고 있는 권씨는 회사에 비전을 제시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큰 재산으로 안다. <김진혜 기자> jh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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