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의 초창기인 1970년대 초부터 한인들의 주종사업으로 자리잡아온 드라이클리닝 세탁업은 계속적인 환경규제의 강화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런데 지난 14일 연방환경청(EPA)이 대기오염 방출 규정 개정안을 발표, 이 법의 시행을 앞두고 세탁업계는 또 한번 시련에 부딪혔다. 이 규정에 따르면 주상복합건물에 있는 세탁소는 앞으로 퍼크기계를 새로 설치할 수 없으며 2020년부터는 퍼크기계를 전면 금지한다는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한인업계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주상복합건물에 있는 세탁소는 미전국의 80%가 뉴욕에 있고, 맨하탄에만 60%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기계로 대체하자면 목돈이 들기 때문에 영세업자들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미주한인드라이클
리너스 총연합회의 연인선 회장(53)은 로비를 통해 한인업자들의 피해를 줄이고 이익을 최대한 도모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환경문제의 로비는 정치인과 환경단체를 대상으로 하는데 로비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또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으니 한인세탁업자들에게 돈을 거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연회장은 우선 자금 마련을 위한 독특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미전국에 한인세탁업소가 3만여개인데 1개 업소에 주평균 400명의 고객이 방문한다면 한 주에 전국의 한인업소를 찾는 고객 수가 1,200만명이나 된다. 또 한달이면 5,000만명이 된다고 한다. 총련이 광고를 받아 세탁소마다 포스터를 붙이게 하고 업소가 광고주로부터 30달
러 내지 50달러를 받으면 총련이 그 중 10%를 거둬서 지역 세탁인회와 나누어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그의 아이디어는 이미 구체적으로 진행중에 있다는 것이다.
연회장은 또 업소마다 세탁물을 포장할 때 사용하는 폴리백에 광고를 넣어 폴리백의 구입가격을 낮추고 총련의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도 이미 추진중이라고 한다. 지난 6월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총연의 주최로 뉴저지의 에디슨에서 개최된 세탁장비쇼는 참가업체 170개, 부스 360
개, 참관인원 6,200여명을 기록한 미국 최대의 세탁장비쇼였다. 연회장은
이 행사를 새로운 세탁장비를 소개할 목적으로 개최했지만 환경 로비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는 부차적 목적도 있었다고 했다.
이처럼 세탁인들의 돈을 들이지 않고 세탁인의 이익을 위한 로비를 하려고 아이디어를 내고 있는 연회장은 그가 사업을 키워온 과정을 봐도 타고난 ‘아이디어 맨’인 것 같다. 한국에서 철도고등학교를 나와 철도청 전산실에서 근무한 그는 군복무 때 카추사 부대에 배치되어 미8군 전산실에서 근무했다.
군복무 중 미8군 내 메릴랜드대학을 다녔고 1981년 이 대학의 추천으로 커네티컷의 브릿지포드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공부하러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에 온 그는 친지를 찾아 뉴욕에 왔고 이듬해인 1982년 세탁업을 하던 고향 선배를 보고 퀸즈에 자그마한 차이니스 런드리를 시작한 것이 세탁업과 맺은 첫 인연이었다.
그런데 차이니스 런드리의 일거리가 많지 않아 시간이 남아돌게 되자 그는 다른 가게를 찾아가 일거리를 가져다가 세탁을 해주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파타임 홀세일인 셈이다. 이렇게 하다가 홀세일 물량이 늘어나자 그는 잭슨하잇츠에 창고건물을 마련하여 전문 홀세일을 시작했다. 이것이 한인 세탁업계에서 홀세일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는 한인 세탁소의 세탁물을 유대인 세탁공장에 맡겨서 세탁해 왔다. 그러나 물량이 늘어나면서 자체공장이 필요해졌다. 기계회사를 찾아가 기계설비의 융자를 부탁했더니 유대인 사장이 홀세일 창고에 나와 보고는 “세탁공장 없이도 홀세일을 하는 사람은 당신밖
에 없다”면서 융자를 쾌히 승낙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1987년 퀸즈의 라과디아 커뮤니티 칼리지의 뒤쪽에 1만5,000 스퀘어피트 규모의 자체공장을 마련하여 대규모 홀세일업체를 갖추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 후 그는 1996년 롱아일랜드 시티에 1만5,000 스퀘어피트의 건물을
구입, 공장을 옮겨 현재까지 세탁홀세일을 해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연회장의 아이디어는 또 한번 그의 사업에 변신을 가져왔다. 한인들의 이민이 늘어나면서 기계가 없는 드랍샵이 늘어나자 홀세일 업체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 또 세탁기계가 작아지면서 웬만한 좁은 장소도 기계를 설치하게 되었고 기계의 성능이 좋아져서 세탁 능력이
늘어나니 부업으로 홀세일을 하는 세탁소도 생겨났다. 그래서 1990년부터 98년 사이 홀세일업체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홀세일 업체가 많아지니 자연히 경쟁이 심했다. 가격경쟁으로 수지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홀세일과 병행하여 새로운 리테일 방식을 개발했다. 맨하탄
의 고급 고층아파트를 대상으로 주민들의 세탁물을 직접 받아다 세탁해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확보한 고객이 웬만한 규모의 세탁소 몇개 정도나 되는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연회장은 뉴욕세탁인협회의 회장도 했고 1997년 뉴욕주 드라이클리닝 환경규제법 제정시 이무림, 황동수씨와 함께 협상팀으로 활동한 뉴욕 세탁업계의 산 증인이다. 2004년에 미주세탁인총련의 이사장이 되었고 금년 6월 총련 회장을 맡았다. 이렇게 세탁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에 업계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게 크다.그는 세탁업에 대한 환경 규제의 강화와 렌트의 압박 등으로 인해 과거보다는 수익성이 떨어졌고 사업이 어려워졌지만 아직도 한인들이 생활기반을 닦을 수 있는 좋은 비즈니스라고 역설한
다.
다른 비즈니스는 남편 또는 부인 위주로 하는 것이지만 세탁업은 부부가 똑같이 기여하는 비즈니스이므로 부부 사이도 좋게 되고 매주 하루나 이틀은 쉴 수가 있는 것이 장점이라는 것이다. 주매상 4,000달러 정도 하는 가게면 가격이 20만달러 정도인데 이 정도의 가게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러니 한인업계에 부담을 주는 환경규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연회장은 연방이 개정환경규제법을 시행하는 이상 퍼크기계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우선 기계공장이 생산을 줄이기 때문에 퍼크기계의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고 어차피 퍼크기계는 생산이 단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인업소들이 언젠가는 새 기계로 교체를 해야 하는데 새 기계로 교체하는 지원금을 받도록 최대한 로비를 하는 것이 가장 유리한 방법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에 따르면 지난 2000년 퍼크기계를 새로운 세탁장비로 교체하는 업체에 대해 5,000달러의 무상 지원금이 나왔는데 지원기금의 부족으로 뉴욕지역은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에 한인업체들이 이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최근들어 미국의 경제여건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인 주종업종들은 각종 규제 강화와 불황이 겹쳐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탁업계의 탈출구를 모색하는 연회장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하나의 롤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기영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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