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공화당의 수호성자처럼 돼 있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원래 민주당원이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을 지지했으며 그 후임자 해리 트루먼의 당선을 위해 열렬히 뛰었다. 그가 보수로 돌아선 것은 50년대 할리웃 영화계를 장악하려던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며 그들의 실상을 파악한 이후다.
그는 재임 기간 ‘바보’란 빈정거림을 많이 받았지만 그만 둔 후 오히려 성가가 올라가 이제는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미국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닦은 대통령”으로 추앙 받고 있다. 그가 당적을 바꾼 것으로 놓고 시비 거는 사람은 없다. 소신에 따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한 때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도 했고 한인 웬디 그램 여사를 부인으로 둬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필 그램 전 연방 상원의원도 그와 비슷한 행로를 밟았다. 원래 민주당이었던 그는 민주당의 정책이 자기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판단, 현직 연방 하원의원 자리를 사임하고 공화당 후보로 다시 출마했다. 결과는 당선이었다. 그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까지도 그의 당적 변경을 비난하지 않는다. 정정당당하게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당적을 바꿨다가 정치 인생에 종지부를 찍은 경우도 있다. 시오도어 루즈벨트가 그 사람이다. 1900년 맥킨리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 당선된 후 다음 해 맥킨리가 죽는 바람에 42세라는 최연소 나이로 미국 대통령이 된 그는 재임 기간 동안 환경 보호, 재벌 규제 등 많은 업적을 남기고 태프트에게 자리를 물려준 후 은퇴한다.
그러나 그 후 태프트가 자기 말을 듣지 않고 다른 길을 가자 1912년 선거에 다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다. 이미 당내에서 기반을 잡은 태프트에 밀려 후보 자리를 놓치게 되자 소위 ‘숫사슴당’(Bull Moose Party)을 만들어 대통령직에 도전한다. 그러나 이는 공화당 표만 갈라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이 백악관에 입성하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그 후 ‘숫사슴당’은 곧 없어지고 루즈벨트도 정계 은퇴를 강요당하고 만다.
한 때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고 3선 현역 의원인 조 리버먼 연방 상원의원(민, 코네티컷)이 민주당 예선에서 신출내기 정치인에 나가 떨어졌다. 부시와 너무 가까웠고 이라크 전을 적극 지지했던 것이 패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리버먼은 패배를 시인하자마자 이를 당내 극렬주의자 탓으로 돌리고 올 11월 본선에서 독립 후보로 나가겠다고 밝혔다. 말은 그럴 듯 하지만 결국은 경선 불복이다. 그런 못된 사람들이 몰려 있는 당이면 진작 나올 것이지 왜 진 다음에 나오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민주주의는 룰을 지키는 게임이다. 국민들은 사태가 자기한테 불리하게 됐다고 일방적으로 룰을 깨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에 루즈벨트가 있다면 한국에는 한 때 유력한 대권 주자였다 경선 불복을 일삼다 몰락한 정치인 이인제가 있다. 리버먼이 지금이라도 이들 두 사람의 전철을 밟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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