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휴전발효 직후 레바논 남부로 돌아오는 피난객들의 차량행렬을 향해 한 청년이 헤즈볼라 깃발을 흔들고 있다.
피해자 - 레바논·국민
승자 - 헤즈볼라
패자 - 이스라엘·미국
34일간 지속된 ‘레바논 사태’의 승자와 패자 그리고 피해자는 누구일까. 이번 싸움의 최대 피해자는 두말할 나위 없이 레바논과 레바논 국민이었다. 15년간 계속된 내전의 후유증에서 이제 막 벗어나려던 차에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빅뱅’이 터지면서 레바논은 10년만에 또다시 폐허 위에 주저앉았다.
베이루트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으로 민간인 89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3,8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지난 10년간 수십억달러를 들여 복구한 레바논의 기간시설과 편의시설들은 고철과 콘크리트 잔해로 분해됐다. 국가를 대표하는 집권정당도, 정규군도 아닌 민병조직 헤즈볼라를 상대로 사실상 전면전을 치른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시계’를 1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렇다면 승자는 누구인가.
물론 하산 나스랄라가 이끄는 헤즈볼라이다. 헤즈볼라는 파워기반인 레바논 남부지역을 배경 삼아 총선에 참여, 연합정부의 일원으로 자리잡은 시아파 무장 정치조직. 그러나 이번 이스라엘과의 팽팽한 공방전을 통해 헤즈볼라는 아랍권 최고의 게릴라 군사집단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지역구의 ‘똘마니’에서 아랍권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국구 ‘주먹’으로 급성장한 것. 이스라엘에 4,000기의 로켓을 쏘아댄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국경수비군을 공격, 2명을 납치하고 8명을 사살하는 등 이번 싸움의 빌미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과잉대응 탓에 국제적인 비난여론을 피하는 동시에 아랍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엎을 수 있었다.
530여명의 전사를 잃었지만 레바논에서만 그 수십배에 달하는 지지자들을 새로 얻었으니 크게 남는 장사를 했다고 보아야 한다.
반면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번 전쟁의 패자에 속한다.
53명의 민간인을 비롯, 167명의 사망자와 865명의 부상자를 낸 이스라엘은 총력전을 펼쳤음에도 한낱 민병조직에 불과한 헤즈볼라를 조기에 제압하지 못한 채 ‘중동 무적’ 신화에 스스로 흠집을 내고 말았다. 게다가 무차별 공습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는 등 국가 이미지 실추까지 겪는 손해를 보았다.
이스라엘의 후원자를 자처한 부시 행정부의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우세한 군사력을 믿고 유럽과 아랍권의 초기 휴전중재 요청을 묵살했다가 나중에서야 부랴부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휴전결의안을 강제하려 드는 등 수퍼 파워에 걸맞는 객관적 분쟁중재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안보리 결의 채택 이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대표, 유럽 각국 지도자들이 휴전 결의 채택이 지연된 데 대한 분노를 표시한 것도 즉각 휴전에 반대, 사태를 악화시킨 미국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해석된다.
또한 수니파와 시아파가 단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중동지역에 새로운 골칫거리를 만들었으며 팔레스타인 문제 해법을 놓고 이스라엘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과 미국은 오만과 오판으로 지난 34일간 이문 한푼 남기지 못한 채 인심만 잃는 헛장사를 한 셈이 되고 말았다.
<이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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