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 김동호 옹 ‘이웃돕기’ 감동
9.11테러 참사 비롯
카트리나·한국 수재…
쌈짓돈 풀어 성금기부
노환 부인 “당연한 일”
“몸이 편치 않은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이지…”
제 한 몸 챙기기 힘겨운 세상. 매일 같이 사람과 맞닥뜨리지만 타인의 불행에 슬그머니 눈 감아버리는 2006년 8월, 천수를 바라보는 김동호(94) 할아버지의 선행은 그 끝을 알 수 없어 “조금만 비겁하면 사는 게 편하다”는 이들의 고개를 떨구게 만든다.
12일 오전 코비나 주택가. 김 할아버지는 기자를 보자마자 “올 줄 알았다”며 “와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쏟아냈다. 김 할아버지는 이틀 전 한국의 물난리 통에 홀로 남은 노인들을 돕고 싶다는 편지를 본보로 띄운 후 하염없이 기자가 도착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김 할아버지의 릴레이 선행은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정 수입이 있어 메디칼 수혜자가 아닌 김 할아버지는 부인의 병 치료를 위해 쌈짓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모인 쌈짓돈은 어느새 2,000달러.
그러나 때마침 터진 ‘9.11테러’는 김 할아버지에게 선택의 틈을 주지 않았다. 김 할아버지는 “어쩌겠어. 남 구하려다 희생당한 이들이 더 급하지 않은가…”라며 부인과 함께 적십자사를 찾아 그동안 모은 돈을 흔쾌히 건넸다.
남을 돕는 선행이지만 김 할아버지의 한쪽 가슴속에 부인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서린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또다시 저축을 시작한 김 할아버지를 잇따른 재해는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2005년 8월 2,000달러가 모이자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김 할아버지의 마음을 한껏 때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기부는 또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2006년 7월 한국의 물난리 소식은 김 할아버지의 호주머니에 모인 2,000달러를 내놓기를 또다시 강요했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2,000달러 할아버지’는 “힘도 없는 늙은이가 괜한 걱정이나 하는 것은 아닌지…”한다면서도 홀로 남겨졌을 노인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72년을 함께 한 부인 허숙종(89) 할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있던 허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끝 모를 선행에 대해 “자연 아니겠어요?”라는 말로 측은지심을 지닌 사람이면 당연한 행동 아니냐는 듯 반문했다. 부부가 함께 살면 닮는다는 듯 마음 씀씀이는 부창부수였다.
달랑 26달러를 들고 1967년 도미한 김 할아버지의 선행은 그 깊이를 파고들수록 끝이 없다. ‘남에게 속을지언정 남 가슴 아프게 하지 말라’며 셋째 아들의 이름을 순박할 순자를 따 ‘순길’이라 지었을 정도로 정 많은 김 할아버지는 퇴직금으로 결손가정을 돕는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김 할아버지는 이같은 선행의 사슬을 만들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도움을 준 이들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고 밝혔다. 도와준 사람으로부터 반응이 없을 때 자연스레 따르는 섭섭함의 물결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서다.
남의 불행에 애써 눈감기가 기부하기보다 어렵다는 김 할아버지. 슬하에 증손자를 포함해 50여명을 두고 있는 대가족의 수장인 김 할아버지는 “가족과 부인이 있는 내게 부족함이 어디 있겠어?”라고 말했다.
대문을 나서는 순간 김 할아버지는 “먼길 고생했는데 더운 날 냉면이나 사 먹으라”며 “성의를 무시하지 말라”며 40달러를 강권했다. 결국 김 할아버지가 한국의 수재민을 돕기 위해 건네 준 돈은 40달러가 더해진 2,040달러. 공교롭게 맞닥뜨린 2,000달러와 자연재해의 엇물림은 2,040달러로 과연 풀릴 수 있을지? 그래도 이어질 김 할아버지의 선행이 6년 뒤 할아버지의 100세 때도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이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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