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한인교회 현재 전경.
미주 한인들의 이민사는 바로 독립운동사다. 매년 8월이 되면 조국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듯 한인들이 이민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민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아쉬운 수준이다. 2002년 이민 100년, 2005년 광복 60주년 등을 맞아 타올랐던 기념사업의 열기도 이미 꺼진지 오래다.
리들리 한인교회 구입사업
모금액 건물값의 10%… 한인지원 절실
리버사이드 최초 한인타운
독립운동의 산실 발굴작업 시작도 못해
작년 이맘 때 중가주에서는 ‘리들리 한인교회 구입사업’ 열기가 뜨거웠다. 초기 이민사에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인 만큼 현재 멕시코인 소유의 이 건물을 다시 한인 커뮤니티가 구입·유지하자는 운동이다. 기금모금을 통해 3만5,000달러의 모금운동을 했고 한국 정부의 지원도 약속 받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이 사업은 지지부진이다. 30만달러 건물가격에 준비된 돈은 여전히 제자리고 한국 정부의 지원도 언제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일이 진행되지 않고 시간만 흐르면서 건물 가격만 올리고 말았다.
이 사업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중가주 한인 역사연구회 차만제 회장은 “중가주 프레즈노 지역 한인 업체들은 규모가 영세해 이런 돈을 모금할 재력이 없다”며 당초 사업에 나섰을 때의 의욕은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는 또 “LA에서는 기업체들의 관심 속에 하룻밤 펀드레이징을 하면 모일 수 있는 돈이지만 지역 이기주의 때문인지 전혀 관심이 없다”며 LA지역 한인사회의 지원 부족을 아쉬워했다.
차 회장은 “9월 총회가 열리는 만큼 다양한 의견을 논의중이다. 최대 일년 안에 이민사의 숙제가 풀리도록 노력하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리버사이드 최초 한인타운(영어 명칭 Riverside Korean Settlement)에 대한 발굴작업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 곳은 1910년대 생긴 최초의 한인타운이자 안창호 선생을 중심으로 한 ‘LA 지역 독립운동’의 산파 역할을 했던 곳. 1937년 한인들이 대거 LA로 이주하면서 자연 소멸되었고 한인회의 사무실, 성인 야간학교, 한국학교 등으로 쓰였던 노동주선소 자리에 대한 발굴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하지만 이 역시 지금까지 말들만 많이 나왔을 뿐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과거 주미대사, 총영사, 보훈처 등에서 관심을 보이거나 이민 100주년 사업회 등에서 사업추진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게다가 근처에 있는 중국촌의 경우 중국 커뮤니티에서 이미 1980년대 중반 발굴사업을 마쳤음에도 한인타운은 그대로 남아 보다 적극적인 운동을 펼쳐야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
UC리버사이드의 최창호씨는 “중국촌 발굴의 경우 3,000여점의 유물이 나와 현재 일부가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며 “한인촌은 현재 그 땅에 개스관이 들어가 있는 등 당면해 있는 문제가 많아 돈만 있다고 해결되는 사업은 아니다. 그 속 유물뿐 아니라 리버사이드 시에 한국 이민사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문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문제 등 복합적으로 접근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관심을 촉구했다.
<박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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