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을 통해 ‘7080 콘서트’ 티켓을 두 장 받았다. 처음에는 그런 데를 무엇 하러 가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집사람이 하도 졸라대는 통에 정말로 딱 한 번만 가기로 결심했다.
공연장에는 사람들이 북적댔고 사람이 북적대는 곳을 꺼려하는 터라 괜히 인상만 써졌다. 늦게 도착한 탓에 안에서는 벌써 공연이 시작되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것은 ‘Leaving Next Door to Alice’를 번안한 곡이다. 그 순간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 나도 그때가 있었는데. 마냥 앞으로만 달려온 세월의 무게가 어깨로 느껴졌다.
간신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니 홍서범과 조갑경이 밴드와 함께 공연을 주도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그 세월의 무게를 훨훨 벗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도 세월과 일상은 우리들을 자꾸 밀어왔나 보다.
밤새 음악을 듣고 이 세상의 모든 고민이 다 우리 것인 양 술 마시고 돌아다니던 그 옛날. 이제 생각해 보니 벌써 20여년이 훌쩍 넘어 있고, 그 시절의 가슴 찡했던 이야기들은 언제부터인지 가슴 한 구석에도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이 세월의 슬픈 장난이리라. 한 여가수의 노래가 가슴을 친다. ‘난 어른이 되어도 어릴 때 그때 꿈만을 간직하리다던…’ 그래, 그때 우리는 꿈이 있었지. 아주 파란 꿈들이. 그저 간직하고만 있어도 온몸을 부풀일 수 있는 그런 아득한 꿈이. 하지만 그 꿈들은 일상이라는 틀에 갇혀진 채로 긴 세월 동안 잊혀져 버렸다.
콘서트의 압권은 단연 어니언스의 임창제였다. 역시 맏형답게 중후한 무대 매너와 관객을 이끄는 솜씨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이제 머리가 허옇게 센 중년의 내가 아닌 새파란 꿈을 간직한 학창시절의 나로 돌아가 마구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편지’를 따라 부르며 가만히 옆에 앉아있는 집사람을 바라본다. 이미 흔적도 없이 지나간 그 옛날의 추억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우리들 것만 같아 보인다. 옆에서 박자에 맞추지 않고 쳐대는 대머리 아저씨의 박수소리도, 앞에서 중년의 나이에 맞지 않게 ‘오빠’를 소리치는 아주머니들도, 그리고 이곳 저곳에서 중년의 세월을 이기지 못해 볼품 사나운 몸매로 흔들어 대는 7080의 몸짓들이 이제는 모두 아름다운 모습이고, 정다운 느낌이고, 그리고 같이 앞으로만 달리며 살아온 가장들의 슬픈 추억의 눈빛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며, 나도 무리에 동화되어 몸을 한번 흔들어 보았다.
그리고 아무나 잡고 ‘고생하셨습니다’라고 하며 악수를 청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최정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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