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기러기 엄마 생활 6년째 되는 베테랑 기러기 엄마’로부터 이 메일을 받았다.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딸을 두었다는 그는‘기러기 엄마’에 대한 미디어의 보도가 너무 편향적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기러기 가족’을 뉴스로 다룰 때마다 미디어의 시각이 십중팔구 부정적이어서 화가 나는 데 그 중에서도 ‘기러기 엄마’에 대해서는 특히 부정적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이번에 그의 시선을 끈 것은 금주 초 한 TV뉴스에 나온 ‘호화판 기러기 엄마들’보도였다. 남가주에서 일부 기러기 엄마들이 호화 주택, 호화 골프장 회원권을 사들이며 너무 호화판 생활을 해서 현지 한인들이 위화감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그 주부는 “작은 아파트에서 애들 공부시키고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영어 공부하며 열심히 사는 기러기 엄마들은 많이 봤지만 그런(호화판) 부류의 기러기 엄마는 아직 못 봤다”며 예외적인 경우를 마치 전체 기러기 엄마들이 그런 냥 보도하는 건 유감이라고 흥분했다.
미주 한인사회에 ‘기러기 가족들’이 날아든 지도 꽤 되었다. 지난 90년대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이 조기유학 붐을 몰고 오더니 2000년대 전후해서는 ‘기러기 가족’유학으로 형태가 바뀌었다. 어린아이들의 ‘나 홀로’유학이 많은 부작용을 낳자 아이 대신 아빠가 ‘나 홀로’ 한국에 남고 엄마가 아이들을 동행하는 방식으로 조기유학의 패턴이 진화했다.
자녀들의 유학을 위해 홀로 남는 아빠를 ‘기러기 아빠’라고 부른다는 소리를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우리 주변에는 ‘기러기들’의 수가 상당히 많아졌다. 학군 좋다는 지역마다 이들 가족이 둥지를 틀어서 ‘기러기 가족’‘기러기 아이’‘기러기 엄마’는 이제 일상대화중의 보통명사가 되었다.
그런 수적 증가에도 불구, ‘기러기 엄마’에 대해서는 색안경이 여전하다고 기러기 엄마들은 불평을 한다. ‘기러기 아빠’의 고독과 어려움에 대해서는 동정하면서도 ‘기러기 엄마’에 대해서는 남편이 보내주는 돈으로 호위호식하는 여자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메일을 보낸 주부는 썼다.
“한국에 있는 남편만 외로운 게 아니라 낯선 나라에서 애들과 혼자 사는 기러기 엄마도 외롭긴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더 외로울 수 있습니다”
남편의 도움 없이 혼자서 낯선 미국생활 배워가면서, 부족한 영어로 학교 찾아다니며 아이들의 미국 학교 적응을 돕고, 비뚤어지기 쉬운 사춘기 아이들 다독거리며 공부시키려면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라고 기러기 엄마들은 입을 모은다. 대중 교통 없는 미국에서 아이들의 운전기사 역할을 혼자 감당하는 것만도 중노동이라고 이들은 말 한다.
지난해 봄 남가주에 온 40대의 한 주부는 오후 3시를 자신의 ‘출근시간’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올 가을 11학년, 9학년 되는 남매의 학교가 달라서 수업 끝난 후 데려오고, 각기 다른 과외활동 장소로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이 저녁 잠자리 들기 직전까지 계속 된다는 것이다.
“어느날 차를 타고 내리는 횟수를 세어보니 20번이더군요. 한국에서 직장일 하며 아이들 돌볼 때보다 여기서 기러기 엄마 하는 게 더 힘들어요”
아울러 한국에서 생각하던 것과는 미국의 현실이 달라서 체류 신분 문제, 교육 시스템 적응, 미국화하는 자녀들과의 관계 등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게다가 현지 한인 부모들이 스트레스 받을 만큼 초강도로 아이들을 공부시키느라 “다른 신경 쓸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것이 대부분 기러기 엄마들의 형편”이라고 한다.
부부가 견우직녀가 되고 부자가 생이별을 할만큼 조기유학은 가치가 있는 일일까. 아이들이 잘 자라서 보람을 느끼는 케이스도 있고, 아이는 아이대로 적응에 실패하고 부부 역시 파경을 맞는 경우도 없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삶의 가치와 방향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그 결과는 오로지 본인들의 몫일 뿐이다. 그렇다 해도 기왕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서 많은 기러기 엄마들이 현대판 맹모로 기록되었으면 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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