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고 남단 수로 연간 11만가구 사용량 누수
미 정부, 흙 수로 23마일 구간 콘크리트로 교체 계획
멕시코 국경마을 멕시칼리 농부 등 주민들엔 오랜 ‘생명수’
“물길 끊으면 살길 찾아 불법 월경하는 수밖에…” 배수진
캘리포니아의 샌디에고 인근 칼렉시코와 바로 국경 넘어 멕시코 마을 멕시칼리 두 도시는 나라는 달라도 오랜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다. 불법이민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돼도 이 지역 주민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곤 한다. 멕시칼리 주민들은 칼렉시코의 월마트와 99센트 스토어에서 물건을 잔뜩 구입해 멕시코 집으로 내려간다. 멕시칼리에서 칼렉시코로 가려면 큰 홀을 지나간다. 줄이 길게 이어져 있지만 에어컨이 잘 나와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샌디에고의 물 부족 현상으로 인해 미묘한 갈등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 수로에서 물이 멕시코 지역으로 흘러나가 논란이 돼 왔다. 이 문제가 최근 불거지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 지역을 통해 불법으로 국경을 넘던 멕시코인들에게도 불똥이 떨어질 판이다. 그동안엔 별 단속을 하지 않았지만 수로와 관련한 갈등이 국경 강화로 이어질 공산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수로는 연방정부 소유다. 물은 콜로라도 강에서 흘러들어간다. 그런데 물이 옆길로 새는 바람에 샌디에고 지역이 만성적인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흙으로 된 수로의 23마일 구간을 콘크리트 물길로 교체할 계획이다. 물이 새는 것을 원천적 봉쇄하려는 것이다.
누수양은 연간 11만2,000가구분이다. 엄청난 양이다. 수십억 갤런으로 추산된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2억2,500만달러의 공사비를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60%를 부담하고 샌디에고 카운티 수도국이 나머지를 충당한다.
멕시칼리 주민들과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은 미국 정부의 수로교체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농부 400명을 포함해 주민 2만5,000명의 수자원을 송두리째 막아버리는 것이라고 볼멘소리다. 특히 멕시칼리 동부지역은 메마른 땅인데 수로의 덕으로 옥토로 만들어 그 동안 양파, 아스파라가스, 호박은 물론이고 마리화나와 다른 농작물도 재배할 수 있다. 물길이 끊기면 옥토가 다시 황무지로 변하게 될 것이다.
몇 대째 가업으로 농사를 지어 온 멕시코 농부들은 “미국정부가 물길을 막아버리면 우리는 살길이 없다. 미국으로 불법 월경할 수밖에 없다. 다른 방도가 없다. 넘지 못할 정도로 높은 장벽을 설치하진 못할 것이다”고 했다. 멕시칼리의 인권변호사 후안 과하르도는 “미국이 물길을 끊어버리고 동시에 불법이민을 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수로교체에 반대했다.
이 이슈는 지난 4월 빈센트 폭스 멕시코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도 논의될 정도로 뜨거운 이슈다. 이 수로를 관리하는 임페리얼 용수 관개국은 콜로라도 강으로부터 내려가는 수로를 콘크리트로 만든다고 해도 콜로라도 강과 관련해 1944년 체결된 국제조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수로교체를 지지했다.
용수 관개국장 찰스 호스킨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 어떻게든 수자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수로에서 새는 물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사실 1980년대 입안됐으나 환경보호론자들의 반대로 법정싸움을 끌어오다 연방법원이 최근에 수로교체를 합법성을 인정하면서 착수할 수 있게 됐다.
호스킨은 “이 프로젝트로 인해 멕시코에 영향이 미칠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이는 미국의 물이며 멕시코인들이 그 동안 사용한 물에 대해 일절 보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프로젝트 반대자들은 이로 인해 불법이민이 급증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종의 협박”이라며 발끈했다.
하지만 반대자들도 할 말은 있다. 정부가 이 프로젝트의 부작용을 심사숙고하지 않은 채 집행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자들은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이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주정부는 프로젝트가 긴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할 뿐이다. 칼렉시코 주민들도 이 프로젝트에 반대하고 있다. 3만3,000여주민들은 거의 히스패닉이다.
이들은 국경 넘어 멕시칼리 주민들과 공동의식을 갖고 있다. 수로를 끊어 이웃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단순히 심정적인 차원이 아니다. 멕시코 주민들의 왕래에 지역경제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 만일 수로가 막혀 멕시칼리 주민들의 생계에 위협을 받으면 칼렉시코 경제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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