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광인 댄 치엔은 수개월 전부터 배드민턴공에 무언가 이상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깃털이 예전보다 가늘어지고 공이 놀랄 만큼 쉽게 망가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배드민턴 시합을 앞두고 있는 치엔은 “이젠 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다들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했다. 치엔은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알고 있다. 연습게임을 한 뒤 치엔은 “예전엔 거위 털을 공에 달았는데 요즘엔 거의 오리털 같다”고 말했다. 조류 인플루엔자로 세계적으로 134명이 숨졌다. 수백명이 병에 걸렸으며 베트남에서부터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농가가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배드민턴 공에까지 후유증을 유발한 것이다.
품질 좋은 중국 북부지역 거위 대량도살
깃털 공급난에 지난 수개월 새 가격 폭등
‘잡탕 깃털’ 수두룩 ‘싼 게 비지떡’ 불만 커
복식 한 게임 치면 망가지는 공만 약 20개
우수 선수·코치·동호인 많은 남가주 직격탄
배드민턴 게임의 핵심은 공에 있다. 이 공은 중국 북부 지역의 거위 털로 만든다. 이것이 최상품이다. 그런데 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해 이 거위들이 대량 도살됐다. 거위 털을 구하기 어려워지게 됐다. 조류 인플루엔자 불똥이 스포츠 배드민턴을 강타한 셈이다.
국제배드민턴협회의 조류 인플루엔자 관련 대변인 토스턴 버그는 “조류 인플루엔자 문제는 배드민턴에 매우 심각한 이슈”라고 우려했다. 당장 중국에서 공을 수입해 오는 남가주는 조류 인플루엔자 후유증을 앓고 있다. 남가주에는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배드민턴 선수와 코치, 그리고 클럽들이 있다.
배드민턴공 가격은 지난 수개월 간 25%나 뛰었다. 12개짜리 한 상자에 25달러까지 한다. 배드민턴을 만드는 회사들은 제한된 양의 거위 털을 확보하려 혈안이 돼 있다. 선수들은 최상품 공을 가능한 많이 구입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종의 사재기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와장창 깨졌다. 가격 폭등은 당연한 귀결이다.
배드민턴 광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도 예견하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변종이 생겨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기라도 하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고 배드민턴공 가격은 고공행진을 할 것이란 전망이다.
배드민턴공 제조회사인 ‘퍼시픽 스포츠 프라이빗’의 관리자인 아메드 바카(54)는 그러나 이러한 재앙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그까짓 배드민턴공 걱정이냐는 핀잔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카의 우려는 배드민턴 광들 사이에서는 공감을 얻고 있다.
치엔과 같은 배드민턴 광들은 돈을 조금 들이더라도 품질을 우선으로 따진다. 이들이 ‘버디스’라고 부르는 공은 시속 150마일의 속도로 날아가도 멀쩡해야 한다. 그리고 포물선을 그리고 하늘을 날 때 그 궤적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중국에서 만드는 ‘진품’은 거위 털 16개를 일일이 손으로 뽑아 만든다. 이를 줄과 접착제로 고정시킨다. 때론 한 거위에서 고작 2개의 깃털만 뽑아내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이 깃털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털이 수북하고 두터운 것만 사용한다. 가벼운 것은 금방 빠져버리므로 내구성이 떨어져 삼간다. ‘진품’은 이렇게 정성스레 만들어진다. 털이 가늘고 빈약하면 ‘짝퉁’이다.
로랜하이츠에 있는 자택에서 ‘Hi-Qua 버디스’ 미국 판매망 홈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윌리엄 찬은 “거위 털 공급은 1년 전부터 빡빡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배드민턴공의 도매가격이 개당 3~4센트씩 인상됐다. 배드민턴공을 만드는데 매달 480만개의 깃털을 사용하는 찬은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가격을 올리지 않았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퍼시픽 스포츠의 바카도 “그 동안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최고급 거위 털만을 고집했으나 이제는 불가능하다.
상품과 질이 조금 떨어지는 깃털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원가가 턱없이 올라 다른 방도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만일 좋은 깃털을 확보했다고 해서 모두 좋은 깃털만을 사용해 공을 만들면 가격을 50%는 인상해야 할 것이라며 ‘잡탕 깃털’의 불가피성을 토로했다.
배드민턴 광인 치엔(35)은 “복식게임을 하면 공이 보통 8~10개 망가지는데 요즘엔 두 배로 뛰었다”며 품질 저하를 꼬집었다. 치엔은 안타까운 현실을 타개하고 싶어 조류 인플루엔자가 없어지도록 기도까지 했을 정도다. 치엔은 조류 인플루엔자로 앓아 누워있는 사람들의 쾌유를 빌 뿐 아니라 거위들도 무사하길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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