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연길시에 가면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헷갈린다고들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방에 건설의 망치 소리가 요란하고 고층 건물들이 삐죽삐죽 올라서는 도시의 모습에서 70년대나 80연대의 서울 영등포쯤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다가도 한글과 중국어로 쓰여진 간판들이 눈에 설게 보여 흠칫하게 된다.
조선족이란 중국의 공식적인 소수민족 분류 용어로 이들은 연길시 인구의 절반이 좀 안되지만 중앙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상 시내의 모든 간판은 한글을 먼저 쓰고 다음에 중국어를 쓰도록 하고 있다는데, 꼬치구이 집을 ‘뀀점’이라고 쓰는 등 생소한 어휘가 많고 간판 자체의 한글 글씨체나 원색에 가까운 색상, 디자인 등이 한국에서 보아왔던 것들과는 차이가 많다.
조선족이 쓰는 한국어에는 함경도 사투리 억양이 많이 배어있어 길거리에서 스치는 한국 사람들이 그 지역 출신인지 외부 사람인지 금방 구별이 간다. 북한과의 국경이 한 시간도 안 되는 연길이라 북한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은데 의외로 이지역의 조선족들은 남한과 유대감을 더욱 깊이 느끼는 듯 보였다. 실제 이 지역 상권은 서울 남대문 시장 상인들이 쥐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여름의 연길시는 남한에서 온 백두산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들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리는 곳이 북한 정부에서 직영한다는 한식당이다. 아시아 외환위기 전에는 북한 직영 호텔과 식당들이 시내에 여러 개 있었는데 이제는 한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의 종업원들은 모두 북한에서 선발되어 파견 나온 사람들이며 매일 음식 재료들을 북한에서 공수해 온다고 한다.
우리 일행도 ‘류경 식당’에 예약을 했다. 나는 이미 한번 그곳에 가서 음식에 딱히 북한의 특색이 배어있지도 않고 값만 비싸다는 인상을 받았었기에 굳이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연변 초행길의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우리 테이블의 담당 웨이트레스는 곱상하게 생긴 외모에 약간 도도하게 느껴질 정도의 자세를 보였는데 이들은 모두 대졸의 엘리트 들이라 했다. 그녀는 조선족들과는 달리 사투리가 거의 배이지 않은 한국어를 구사했다.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소형 관광버스들이 몇 대 도착하더니 식당은 완전 만원이 되었고 메뉴에서 생선회 같이 비싼 음식은 시키지 않고 소소한 것들만 주문하는 우리에게서 이들은 관심이 멀어져 가는 것을 완연히 느낄 수 있었다.
찬밥 신세인 우리는 음식이 언제 나와 주나 기다리며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은 옆 테이블들만 기웃대는데 갑자기 중앙 무대에 불이 번쩍이더니만 풍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 웨이트레스가 키보드를 담당하고 있는 것을 본 우리 일행은 이제 저녁 얻어먹기는 틀렸구나 하고 낙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향의 봄’등 우리 귀에 익은 노래 몇 곡이 이어지면서 비싼 북한산 버섯 술로 얼큰해진 옆 테이블 사람들이 무대로 우르르 나가 함께 노래를 하고, 사방에서는 연신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나중에는 어린아이들 까지 어울려 춤까지 추었고 출연진들에게는 꽃다발이 안겨졌다. 식당에 들어갈 때 벽에 꽃다발 100원, 50원 이라고 쓰여진 걸 보고 의아했는데 바로 이 순간 의문이 풀려졌다.
이것이 남북의 일반 시민들이 서로를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의 하나인 것이 틀림없고, 그렇게라도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장면이 썩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주문한 음식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해서 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yk@campwww.com
김유경
Whole Wide
World In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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