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국경지역 캠포, 비포장길 언덕
베트남 참전 한 눈 잃은 57세 용사 총 들어
멕시코 불법 월경자 막으려 불철주야 경계
겁낸 멕시코인들 다른 지역으로 우회할 정도
캘리포니아 캠포. 포장도로를 벗어나 울퉁불퉁 산길을 따라 이름도 없는 언덕에 올랐다. 애꾸인 한 주민이 애꾸인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주인과 고양이는 멕시코 국경을 표시하는 엉성한 펜스 바로 옆에 밴을 주차해 놓고 이 곳에서 잔다. 그는 몸이 말랐다. 그리고 외롭게 지낸다. 반면 고양이는 살이 통통하다. 브리트 크레이그는 57세다. 스스로를 스파르타식 성격이라고 한다. 전쟁터에서 공훈을 세워 훈장을 여럿 탄 베테런이다. 그리고 그는 불교를 믿는다. 작은 금고 같은 곳에는 책들이 가득하다. 철학서적도 상당수다. 크레이그는 독서를 좋아한다.
100도의 폭염 속에서 크레이그는 “투쟁할 대상이 없는 인간은 비참하다. 자유로워질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경구를 떠올렸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가치 있는 투쟁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는 미 국경지역에서 불법월경자들을 막기 위해 민간 차원에서 결성된 자경 프로젝트의 회원이다. 크레이그의 임무는 현재의 위치에 경계를 서며 불법이민자들을 감시하는 것이다. 지금껏 500일 동안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
자경단은 자체 회원 수를 8,000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수는 확인할 길이 없다. 정확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2,000마일 국경라인에 10마일 당 2명이 풀타임으로 경계를 서고 있다. 날씨가 무척 더워 미디어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크레이그는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조지아의 신문기자였다. 할아버지도 조지아에서 신문기자를 했다. 그의 증조부는 농장을 경영했다. 크레이그의 삶은 전연 딴판이다. 학교에서 공부도 별로 잘하지 못했다. 그는 군인이 자신의 적성에 맞고 실력을 발휘할 직업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낙하산 부대에 자원했다. 월남전에 파병됐다. 전쟁 중에 눈을 하나 잃고 말았다. 고향에 돌아오자 가족들이 반기질 않았다. 크레이그는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배를 타고 돌아다녔다. 낚시도 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작곡을 하며 소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말년에 그는 이 언덕에 정착했다. 화장실도 없어 원시적인 방법으로 처리한다. “아무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제 내가 하는 일을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그는 상이군인이라 정부로부터 매달 2,500달러를 받는다. 이 언덕에서 생활하는 데는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는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부시 대통령은 이들 자경단원들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국경수비대들도 이들 자경단 덕에 일손이 덜어졌다. 그리고 지난 1년 반 동안 자경단원이 불법이민자들을 사살했거나 학대했다는 보고가 전혀 없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불법이민자들을 혼내주기는커녕 오히려 경계임무를 수행하다 강도도 당하고 돌 세례도 받았다고 했다. 크레이그의 차창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간혹 자경대원들이 이 언덕에 올라온다. 이들은 주말에 이 곳에서 술을 마신다. 순수한 경계보다는 마치 피크닉 온 사람들 같기도 하다. 그러나 크레이그는 다르다. 주위 사람들은 그래서 크레이그를 전쟁터의 대령처럼 여긴다. 나직하게 말하고 마치 중요한 군사작전을 하듯이 진지하게 경계를 서기 때문이다.
크레이그는 괴짜다. 캠포 지역의 자경대장인 로버트 쿡을 무시한다. 쿤은 크레이그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분개한다. 한 번은 두 사람이 언덕 밑에서 마주쳤다. 서로 주먹이 오고 갔다. 키가 1피트나 큰 크레이그가 쿡의 안경을 깼다. 크레이그는 적어도 이 언덕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갖고 있다.
크레이그는 자경대원이 되기 위해 플로리다 세인트 어거스틴에서 왔다. 연방토지에 총기를 휴대하고 다닐 수 있는지 알아보고는 총을 찼다. 그는 국경을 지킨다는 데 누구보다 강한 뿌듯함을 지닌다. 크레이그는 자신의 전쟁경험을 삶의 지혜로 삶는다. “히스패닉들이 미국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오는 것이 곧 전쟁을 의미하지는 않겠지만 역사를 보면, 전쟁은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의 영토에 손을 대면서 시작되곤 했다”고 말했다.
적어도 크레이그가 경계를 서고 있는 지역엔 불법이민자들이 얼씬도 못한다. 우회해서 다른 곳으로 간다. 크레이그의 서슬 퍼런 경계를 겁내하는 것이다. 어찌됐든 크레이그의 자경대원으로서의 역할은 효과를 내고 있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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