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빵과 딱딱한 우유’-뭔가 아련한 그리움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필경 귀하는 중년, 적어도 40대 중반이후의 세대이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은 기아에 시달리던 한국 국민들에게 기본 식량으로 밀가루, 옥수수 가루, 우유가루 등을 공급했다. 동네에서 배급하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양푼 하나씩 들고 나와 배급을 받았고, 학교에서는 옥수수 빵과 우유 덩어리를 점심 대용으로 나누어주었다.
당시 우유는 전지분유였는데 태평양을 건너 수송되는 동안 돌덩이 같이 굳어져서 우유를 쪄서 먹어야 했다. 우유가 덩어리라니 - 식품 유효기간 따지는 요즘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때 원조물자 포장에는 모두 악수하는 그림이 찍혀 있어서 ‘악수 표’라고 부르기도 했다. 대 한국 원조를 주관했던 미 해외경제협력처(USOM)는 태극기와 성조기 그림과 함께 두 손을 굳게 잡은 악수 그림이 찍힌 부대에 원조물자들을 담아 보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그 시절, 구호물자를 무한정으로 보내던 미국은 우리에게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풍요의 나라였다.
미국과 종종 혼동되며 어린 우리들에게 또 하나 선망의 대상이 있었다. 유엔이었다. 해방 이후 유엔 감시하에 정부가 수립되고, 한국 전쟁이 터지자 유엔군이 들어와서 자유 대한민국을 도왔다는 내용들을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우면서, 유엔은 정의의 상징, 힘의 상징이었다. 유엔이 창설된 10월24일을 유엔 데이로 기념했고, 그 유엔을 지휘하는 유엔 사무총장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여기며 역대 사무총장 이름을 외웠다.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가 5년이고 대부분 연임을 해서 10년씩 재직하다 보니 가장 익숙한 사무총장 이름에 따라 연배가 드러나기도 한다.
한국전쟁 전후 8년을 맡은 트리그베 할브단 리(노르웨이), 50년대의 다그 함마슐트(스웨덴), 60년대의 우 탄트(미얀마), 70년대 쿠르트 발트하임(오스트리아), 80년대의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페루)가 있었고 연임에 실패한 브트로스 부트로스갈리(이집트)에 이어 현 코피 아난(가나) 사무총장이 지난 97년부터 올해 말까지 10년을 재임했다.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충주에서 자란 한국 소년이 그 뒤를 잇는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사실상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되면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 한인사회가 기뻐하고 있다.
반 장관은 소년시절 충주 비료공장에 파견되었던 미국인 엔지니어 부인들에게 영어를 배운 것이 씨앗이 되어서 외교관이 되고,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빈한한 나라의 시골 소년이 국제 사회 최고위 외교관직에 오른 경사이고, 국가적으로는 유엔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한 후 유엔 가입도 안돼서 쩔쩔 매던 나라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위상에까지 오른 경사이다.
난제 산적한 국제무대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평화와 화합의 역량을 발휘하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와 신인도도 같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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