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문제만큼 한국과 외국의 반응이 판이하게 다른 이슈도 드물다. 북한이 핵실험 사실을 공식 발표한 지난 9일만 해도 전 세계는 이를 톱뉴스로 다루고 온갖 특집을 내보냈지만 정작 한국 내 분위기는 조용하기만 했다.
물론 정치권에서는 “충격”과 “경악”을 이야기하고 언론에서는 이를 대서특필했지만 정작 길거리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걱정하는 목소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은행으로 달려가 현금을 찾는 사람도, 시장에서 라면을 사재기하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첫날 하루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하기는 했다. 그러나 2~3일 사이 주가는 하락폭을 상당 부분 만회했고 환율도 안정을 되찾고 있다. 금강산 관광객만 30%의 취소율을 보였지만 이는 뒤집어보면 전 세계가 북한 핵실험으로 난리를 치고 있는데 70%는 태연하게 북한 영토로 관광을 하러 떠났다는 얘기가 된다.
한국인의 태평함을 제일 잘 보여주는 곳은 강원도다. 이 곳은 그 동안 도지사가 북한을 방문하고 남북 청소년 공동체육대회, 문화교류 행사를 벌이는 등 여러 지자체 중 가장 활발히 북한과 접촉해 왔다. 핵실험 발표와 함께 이미 계획됐던 여러 사업은 중단됐지만 이를 걱정하는 강원 도민은 만나기 힘들다.
이들의 진짜 걱정거리는 딴 데 있다. 지금 전도적으로 열리고 있는 각종 축제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치르고 이를 보러 몰려든 전국의 관광객을 어떻게 접대하느냐이다. 지금 강원도는 동네란 동네는 빠짐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갖 명목의 축제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원주에는 세계 군악축제인 따뚜 페스티벌과 강원 감영제, 속초에는 설악 문화제, 동해에는 오징어 축제, 정선 민둥산에는 억새꽃 축제 등 온갖 축제가 만발해 있다.
설악산과 오대산 일대는 이번 주말 절정인 단풍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고 이들을 싣고 줄을 지어 공원 내로 들어오는 수백대 관광버스의 모습은 장관이다. 긴박한 북한 뉴스의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외국 기자가 이 광경을 봤다면 어안이 벙벙해 돌아갔을 것이다.
고대 교수로 있는 B. R. 마이어스는 12일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도널드 그렉 전 주한 미대사를 비롯 많은 사람들이 “김정일의 목표는 자살이 아니라 생존이기 때문에 핵 공격 같은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으나 북한 체제는 스탈린식 공산주의가 아니라 일본 천황제에 더 가깝다며 일본이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음을 상기시켰다.
북한 핵에 너무 흥분해도 안 되겠지만 지금 한국인처럼 태평천하로 있어도 좋은 것일까.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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