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주의 랜돌프-메이컨 여자대학 이사회가 최근 중대발표를 했다. 남학생도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이사회가 열리는 동안 교정에서는 여학생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학칙개정 반대시위를 벌였다. 진저 워든 임시총장은 시위학생들에게 목이 멘 듯 “미안하다”고 했다. 이 대학을 나온 워든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잠시 후 워든과 학생들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남부의 명문 여자 대학으로의 명성이 무너져 내리는 비통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이비리그, 여자에 문호 개방해 꾸준히 흡수
1960년대 300여개 현재 60개 정도, 계속 감소세
“남녀공학이 더 좋다” 여학생들 사이에 인식 확산
일부 대학, 장학금·유학지원 등 ‘생존 전략’ 강구
‘남학생 지원허용’ 학칙개정에 여학생들 ‘눈물 시위’
예일,예일, 프린스턴과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여학생을 받아들인 지 수십 년이 지났다. 그 여파로 1960년대 약 300개 이던 여자대학이 현재 60개도 안 된다. 웨슬리, 바나드, 마운트 홀리요크 등 명문여대는 그런대로 버티고 있지만 규모가 작은 인문대학들은 재정위기에 봉착해 있다. 랜돌프-메이컨대학도 그 중 하나다.
선택이 폭이 넓어지면서 여학생들이 여자대학을 기피하는 경향마저 생기자 랜돌프-메이컨 대학은 지난 수개월간 지원자가 급감했다. 랜돌프-메이컨 대학의 결정이 있기 직전, 보스턴 외곽에 있는 리지스 칼리지는 내년 가을학기부터 남학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럿거스대학의 여자전용학부인 더글러스 칼리지는 내년 가을학기부터 독자적으로 학위를 수여할 수 없게 된다. 그 정도로 취약해졌다는 얘기다. 또 여자대학이 남자대학과 통합되는 경우도 있다. 털레인 대학이 지난 봄 소피 뉴콤 메모리얼 칼리지를 대학 산하 남자 학부와 통합한 것이 그 한 예다.
1868년 뉴욕에 세워진 웰스 칼리지는 지난해부터 남학생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뉴욕 주 태리타운에 있는 매리마운트 칼리지는 2002년 포담 대학과 합병됐다. 내년 졸업생 배출을 마지막으로 여자대학으로서 쌓아온 100년의 역사를 정리해야 한다.
물론 여자대학이 남학생을 받아들이는 게 위험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여학생들은 학칙개정에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청원서를 제출하고, 데모를 하며 법적 투쟁도 불사하고 있다. 더 이상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는 동창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사회나 대학행정가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설명한다. 칼리지보드(college board)에 따르면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해 SAT 시험을 치른 여학생 가운데 여자대학에 지원하겠다고 한 학생이 불과 3.4%에 지나지 않았다. 10년 전의 5%보다도 감소했다. 여학생들이 여자대학에 지원하길 원치 않는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랜돌프-메이컨 대학은 여자대학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쏟아 붓고 있다. 1년 학비가 3만 달러가 넘지만 실제 학생들은 절반도 안 되는 돈을 낸다. 나머지는 각종 지원금으로 충당한다. 결국 대학 측은 1억4,000만 달러의 기부금에서 나온다. 허리가 휘는 것이다.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지경이라는 게 대학 측의 볼멘소리다.
보스턴의 마케팅회사인 아트&사이언스그룹의 데이빗 스트라우스는 여자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남녀공학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러한 인식은 앞으로 점점 더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
여자대학들은 남학생과 경쟁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지원자를 ‘유혹’하고 있지만 많은 여학생들은 남자와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환경을 더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나 고립무원의 지경에 빠져들고 있다.
그러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여자대학들도 있다. 랜돌프-메이컨 대학과 100년 넘게 자매결연을 맺어 온 스위트 브라이어 칼리지와 홀린스 대학은 랜돌프-메이컨 대학의 발표 이후 “우리는 여자대학으로서의 자존심을 계속 지켜나가겠다”고 재천명했다.
스위트 브라이어 칼리지는 재학생들에게 취업현장 경험과 해외 유학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학생들을 유치하고 있다. 지난해 등록학생이 557명이었는데 올해엔 600명이 넘었다. 조만간 700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학교 측은 전망했다.
워싱턴의 가톨릭 여자대학인 트리니티 대학은 워싱턴 지역의 저소득층 여학생들에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저소득층 학생들은 학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학교 측은 대기업의 기부금으로 이러한 혜택을 학생들에게 베풀고 있다.
아무튼 위기를 맞고 있는 여자대학들은 여러 가지 ‘생존전략’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학생들이 남녀공학 대학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 여자 대학의 미래를 가리는 먹구름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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