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조종사들이 작전 수행에 나선다. 적성국 특정 시설 폭격을 위해서다. 적성국은 명시되지 않는다. 조종사들은 험준한 산세와 철통 방어를 뚫고 작전을 성공시켜야 한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지형을 봤을 때 중동 어디쯤이 공간적 배경이다. 단서는 있다. 폭격 대상 지역에는 오래전 미국에서 수입한 전투기 F14가 있다. 1979년 혁명 전 친미였던 국가가 떠오른다. 이란이다. 영화 ‘탑건: 매버릭’(2022)은 그렇게 적성국을 특정하지 않으면서 현실감을 부여한다.
■교관으로 일하던 장교 매버릭(톰 크루즈)은 젊은 조종사들을 이끌고 작전을 성공시킨다. 매버릭은 곡예 같은 비행으로 적기 공격을 피하고 미 항공모함으로 돌아온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탑건: 매버릭’은 국내 극장에서 823만 명이 봤고, 전 세계에서 14억9,349만 달러(약 2조500억 원)를 벌어들였다. 개봉 당시 영화를 본 대다수는 개연성은 인정하면서도 3년 뒤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이 현실화되리라 예상하지는 못했으리라.
■미국과 이란의 악연을 그린 영화로 ‘아르고’(2012)가 있기도 하다. 이란 혁명 당시 444일 동안 이어진 ‘이란 인질 사건’이 배경이다. 성난 이란 시위대가 미 대사관을 점령하자 직원 6명이 인근 캐나다 대사관저로 몰래 피신한다.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토니 멘데스(벤 애플렉)는 영화 촬영을 내세워 이란에 입국한 후 6명을 구출해 낸다. 기밀이었다가 1997년 공개된 실화가 바탕이 됐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이기에 가능했던 이야기다.
■ ‘탑건: 매버릭’과 ‘아르고’는 급박한 상황 속에 인간애를 묘사한다. 매버릭은 조종사 제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다. 멘데스는 집에 돌아가고 싶은 이들을 위해 서슴지 않고 사지에 뛰어든다. 직무수행을 넘어 인간을 향한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전쟁은 스크린에서 스펙터클하나 현실에서는 공포다. 중동 무력 갈등 속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인간애를 발휘하기를 원하는 건 지나치게 영화적인 바람일까.
<라제기 / 한국일보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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