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 스님을 따라 한국 불교에 귀의한 서구 스님들의 염불소리는 구절 끝마디에 조금 힘을 넣어 약간 치올리며 뭉뚱그리는 억양이 조금 독특하기는 하지만 틀림없는 한국식 한문 염불이다.
특히 삼귀의를 할 때면 귀의불 양족존, 귀의법 이욕존, 귀의승 중중존, 하며 유장하게 늘이며 가락을 눙치는데 목탁소리를 신호로 스님들 뒤에서 함께 가락을 맞추어 따라 읊으며 일어섰다 엎드렸다 부처님께 절을 하며 예불을 할라치면 이분들이 처음에 이를 익히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무엇이 이분들로 하여금 날마다 빠뜨리지 않고 이렇게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게 만드는가 하고, 박자에 맞춰 오르내리는 잿빛 어깨며 고동빛 가사로 덮인 등어리를 스쳐보며 지긋이 가슴이 아리어 올 때가 있다.
한 번은 이곳 어느 한국절에서 모신 스리랑카 등 남방 스님들과 함께 삼귀의를 했는데 황금빛 가사에 잘 어울리는 거무스름한 얼굴의 스님들이 줄지어 앉아 그 옛날부터 전해 오는 빠알리 말로 ‘부담 사라남 가차아미, 담맘 사라남 가차아미, 상감 사라남 가차아미, 하며 낭랑하게 외우는 소리를 들으며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니 내가 마치 그 옛날 인도 어느 사원의 사라쌍수 그늘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이런 한문식 삼귀의는 아직도 많은 한국절에서 예식에 사용되지만 이제는 피아노나 다른 악기 반주에 맞추어 한국말로 풀어 노래로 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하는 단순하고 쉬운 가락이면서도 조금씩 소리를 높여가며 경건하게 나아가는 품이 가히 찬불가 중의 명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가운데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조금은 어긋난 풀이인데 원문은 스님이 아니라, 스님도 그 일부로 속해 있는 부처님을 따르는 무리, 즉 사부대중인 승가에 귀의하는 것이니, 어떤 이들은 이를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로 굳이 바꿔 부르기도 한다.
사부대중이라는 것은 집 떠나 부처님의 제자가 된 비구와 비구니, 집에 머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녀인 우바새와 우바이를 일컬음인데 무릇 불자라면 이 네 가지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한 때 불교 중흥의 일환으로 비구와 비구니를 보완하고 이들과 우바새, 우바이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남녀 재가 성직자를 두어 육부대중으로 하자는 논의가 한국에서 일었지만 몇 가지 사정으로 수그러지고 말았는데, 법사나 포교사 등 중간 계층의 현실적인 위상이나 효과적인 포교가 미흡한 한국과 미주의 불교 현실을 보면 그게 그냥 사장하고 말았어야만 할 안이었던가 하고 생각에 짚이기도 한다.
어쨌든 불자들은 읊는 말소리는 각각일지라도 한결같이 세 가지에 귀의한다. 귀의란 말 그대로 돌아가 기대고 품에 안기는 것이니, 짧은 인생 헛되이 헤매지 말고 부처님과 부처님이 밝히신 진리와 부처님을 따르는 벗들에게로 돌아가 어머니의 품 같은 안식을 얻고 부처와 같은 밝은 깨침을 얻겠다는 다짐이다. 불가사의와 기적, 시기와 응징으로 점철된 앞뒤 안 맞는 초월자가 아니라, 이 우주를 싸안은 크나큰 부처님의 품이며, 그 밝은 가르침의 품이며, 서로 돕고 일깨우는 참된 길동무들의 품인 것이다.
이 원 익 (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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