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흉내 내며 목회를 시작해서 이제야 겨우 철들어갈 나이에 벌써 목사가 된지 사반세기가 흘렀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갈라지는 경험도 없이 주시는 소명을 두고 매일같이 다시 확인하며 목사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직도 나는 흑과 백이 분명하고, 무엇이든 해석이나 질문의 여지없이 분명한 결론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무섭기도 합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것처럼 늘 하나 뿐인 해답을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사는 사람들 말입니다.
특별히 우리들 주위에서 소위 “목사님” 칭호를 듣는 분들 중에 언뜻 보아도 그가 목사인 것을 알아볼 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목사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신앙이나 삶의 내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 허우대나 사람을 대하는 자태(姿態)에서 눈에 금방 “목사”로 띄는 분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스님들이야 스님들이 입으시는 옷이 있고, 신부님들도 그 복장으로 신분이 드러나 있지만, 목사님들은 대개 그 행동거지(行動擧止)나 언사를 보고 구분이 간다는 말씀입니다.
짧은 내 생각에는 목사 같은 사람보다는, 사람 같은 목사가 좋습니다. “양떼를 치면서” 양들과 함께 섞여있는 목자 같은 사람 말입니다. 사는 모습 속에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그런 목사 말입니다. 나도 살면서 사랑하면서 철이 더 들면, 종교꾼 같은 목사 말고, 사람 같은 목사가 될 것입니다. 거룩한 것은 가장 인간적인 곳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룩하시는 거룩은 사람들과의 구분에서가 아니라, 사람들 틈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게 예수는 하나님 같은 사람이 아니라, 늘 사람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종교꾼으로 사회적인 지도자로 늘 사람들 틈에서 “튀어야”하는 바리새인들 옆으로 예수는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신성하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버림받은 여자들에게, 병들고 저주받은 이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예수는 늘 사람 같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있어 거룩한 것은 반드시 세상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힘든 사람들이 더욱 힘들어지는 계절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에 거룩함에 대한 갈망이 있다면 먼저 그들에게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가는 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교인이 멀리서 자기 친구에게 나를 목사라고 이야기 해줬더니, 그 친구가 “목사 같이 생기지 않았어, 어째 무슨 두목 같아…”하더랍니다. 아직도 나는 목사와 두목 사이에 사람 같은 목사가 되려면, 한참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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