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너무나도 유명한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시작 부분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단순한 도덕적 규범이 아닌 실제 삶에서 지켜야 할 윤리의 대강령을 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곧잘 비견되는 붓다님의 유명한 설법이 있습니다. 초기 불교 교단에서 샤카무니 붓다님의 가장 큰 전법 활동의 수확은,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도들인 깟사빠 삼형제와 1,000여명의 제자들을 격렬한 종교적 대론 끝에 제압하고 개종시킨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붓다께서는 그들과 함께 마가다국 수도인 왕사성 교외에 있는 가야산으로 들어가, 그 유명한 ‘불의 설법’을 펼치십니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눈이 불타고 있고 모든 사물이 불타고 있다. 안식이 불타고 있고 시각이 불타고 있다. 즐거움이던 괴로움이던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것이던, 시각으로 인해 일어난 모든 감각이 불타고 있다. 그것들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불로 타고 있다. 또한 그것들은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그리고 비통함과 슬픔, 번뇌와 괴로움의 불로 타고 있다. 귀도, 코도, 혀도, 몸도, 마음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니라.
비구들이여! 들은 것이 많은 나의 성스러운 제자들은 그들에 대해, 탐욕의 불을 끄고, 분노의 불을, 어리석음의 불을 끔으로써 해탈을 이루느니라.”
샤카무니 붓다께서는 결국 우리 내부에서 훨훨 타고 있는, 모든 고통과 악의 뿌리인 탐욕과, 증오와 분노, 어리석음의 세 가지 독이 되는 마음의 불을 끄라고 강력히 주창하십니다.
따라서 불교의 알파요, 오메가는 끊임없이 훨훨 타오르고 있는 이 마음의 불을 끄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물론 살아서나, 죽어서나 니르와나(열반)입니다. ‘Nirvana’란 ‘불을 훅 불어서 끄는 것’ ‘연료가 모두 타버려 저절로 불이 꺼진 상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탐욕의 불, 증오와 분노의 불, 어리석음의 불을 끄고 나면, 살아서는 인격의 완성자로, 죽어서는 흔들림 없는 즐거움이 진실로, 진실로 있는 그곳에 영원토록 머물게 된다고 합니다.
살아온 세월이 정녕, 소쿠리에 물을 담고 달려온 세월이라면,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볼 일입니다.
“가슴에 타는 불 무엇으로 끌 것인고?”
그에 대한 지극한 해답은 바로 이러합니다.
“한 송이 들꽃에게 물을진저!”
박 재 욱 (LA관음사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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