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신의 ‘그룹포토 No. 21’
무미한 일상, 그러나 희망이 살아있는…
반복되는 단순작업 통해
현대사회의 상실감 표현
미국작가 말코비츠와 2인전
앤드류샤이어 갤러리서
여기 108명의 얼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언뜻 보기에 다 여자들이고, 단체사진이라도 찍는 양 여기저기 무리지어 서있다. 그런데 108개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같은 사람들이고 또 다른 사람들이다. 열서너개의 모델이 복제되어 100여 군상으로 겹쳐지면서 커지거나 작아지기도 하고, 뒤로 숨거나 옆으로 비키기도 하고, 다른 색의 옷을 갈아입기도 하면서 마치 각기 다른 사람인척 무대에 등장한다.
‘동일한 그러나 다른…’
몇가지 패턴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획일화된 모습을 이렇게 단순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음이 경이롭다. 현대사회의 익명성, 집단적인 기억, 존재감의 상실… 그런 것들을 아프지 않고 건조하게 드러냄으로써 우리의 무미한 일상을, 살아있음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반짝이는 작가 영신(Yong Sin)의 ‘동일한 그러나 다른…’(This is the Same, but Different) 전시회가 앤드류샤이어 갤러리(대표 메이 정)에서 3월10일부터 4월7일까지 열린다. 미국작가 배리 말코비츠의 ‘20/20’ 작품전과 함께 2인전 형식으로 열리는데 메인 전시회는 영신의 것이다.
영신은 백남준, 서도호를 이을 세계적인 한인작가로 평가받는 작가다. LA카운티뮤지엄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LACMA에 작품이 영구 소장된 한인작가는 백남준에 이어 그가 유일하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이민 온 후 오티스를 졸업했으며 여러 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치열한 작가정신을 보여왔다.
영신은 이번 전시에서 얼굴 없는 사람들의 군상과, 정사각형 드로잉을 수십 수백개씩 잘라내 커다란 패널에 붙인 콜라주 작품 등 30점을 보여준다. 정사각형들 역시 ‘동일한 그러나 다른’ 크기와 굵기와 색으로 나열되는 작품. 반복적인 단순작업을 통해 일상의 덧없음과 매몰된 존재감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그의 작품이 아름다운 것은 무상을 무상하게만 표현하지 않는데 있다. 얼굴없는 사람들의 빈 얼굴 속에 희망을 놓지 않은 인간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수많은 정사각형들이 다함께 혹은 따로 흥겨운 유희를 벌이는 광경을 그려본다. 각자 다르게 그러나 동일한 아름다움으로…
함께 작품을 전시하는 배리 말코비츠(Barry Markowitz)는 남가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로 20개의 불연속적인 컴퓨터 이미지를 다시 20개의 나무판 위에 재현하는 20/20 작업을 소개한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이 제각각의 의미를 20개의 이미지 속에서 찾아내도록 함으로서 반복과 우연을 형상화시켰다. 그의 작품은 MOCA(남가주 현대미술관)를 비롯 로제타 게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유명한 예술 애호가들이 소장하고 있다
메이 정 앤드류샤이어 대표는 “두사람의 작품은 아주 달라 보이지만 중복되는 이미지, 반복과 우연을 이용한 컨셉이 비슷하고 주요 뮤지엄 소장 작가들이라는 점에서 한자리에 초대했다”고 말했다. 두 작가 모두 참석하는 전시회 오프닝은 10일 오후 6시부터 8시30분까지.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주소와 전화번호는 3850 Wilshire Bl. #107 LA, CA 90010 (213)389-2601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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