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이민자들의 입지가 그 어느 때보다 좁다. 미 곳곳의 타운에서 반이민 정서가 내포된 조례안이 상정되고 있고 뉴저지의 어느 한 타운은 경찰에게 이민국 단속요원의 권한을 부여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종이 한 장’ 때문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서류 미비자들의 고난과 현황, 그리고 그들이 직면한 미래를 시리즈로 분석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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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2명의 자녀와 함께 관광비자로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 지금은 불체 신분으로 있는 김모씨(44·남).
김 씨는 “미국 와서 한번도 자녀들과 집과 교회, 직장 외에 나들이를 가본 적이 없다”면서 “돈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신분 때문에 괜히 나갔다가 문제가 생기면 전 가족이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항상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3년전 애틀란타에서 가족과 함께 올라온 오씨(47. 남).
한국서 사진학을 전공했던 오씨는 애틀란타에서 불체자로 있으면서 조그만 그로서리를 운영해 왔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불체자 신분을 알고 있는 한 한인과 시비가 붙어 말다툼을 벌였고, 그 한인이 이민당국에 신고하는 바람에 워싱턴으로 도망와 잠시 살다가 8개월만에 또다시 가족과 함께 잠적해 버렸다.
워싱턴을 떠나기 전 오씨는 “불체자 단속, 추방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한다”면서 “이 때문에 바깥 외출을 가능한한 줄이고 사람 만나는 것도 피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경찰에 붙잡히는 것도 문제지만 같은 한인에게도 절대로 신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서 “같은 교인이건 친구건, 한인이건간에 미국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2000년 미국에 온 이 모(44)씨는 “불체자가 돼도 항상 사면이 됐다는 친지의 말을 듣고 미국 왔다가 너무 큰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경찰이 올까봐 두려워 도망치듯 현장을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2001년 9월11일, 세상을 바꿔버린 엄청난 일이 뉴욕에서 터져버렸다.
‘9.11 테러사건’은 하루아침에 한인을 비롯한 불법 체류자들의 인생을 뒤바꿔 놓았다. 텔레비전과 신문에서는 이 사건으로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과 수사가 강화된다는 기사가 연일 게재되면서 불체자들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증폭됐다.
이씨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던 주위사람들은 “경찰에게 잡히면 추방된다” “이제 추방되면 다시는 미국에 오지 못한다”라는 말로 이씨를 자극했다.
이민법 전문 변호사들과 무려 10번이 넘게 상담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2년 전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미 연방정부의 포괄적인 이민개혁법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지만 아직도 그렇다할 희소식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처럼 9.11은 미국에 거주하는 수 만여 명의 한인 불체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씨는 “사실 9.11 이전에는 신분 문제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9.11이 터지고 난 이후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미 정부의 입장과 주류사회의 정서가 엄청나게 변한 것 같다”며
“요즘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불체자 체포 역시 9.11 이후에 따른 여파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박광덕·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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