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사건이 없다면 예수님도 한낮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는 좋은 선생님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활을 믿는 것은 상당히 힘듭니다. 그런데 그 당시 믿지 못할 사건을 믿고 따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갈릴리 사람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변두리 지역입니다. 지리적으로나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주류 사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오죽하면 갈릴리 지방의 한 도시였던 예수님이 사셨던 나사렛을 두고 당시 주류 사람들은 “나사렛에서 뭐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요2:46)고 할 정도로 천대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갈릴리 지역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경청하고 따랐습니다. 제자들도 이 지역 출신이 다수였고 끝까지 따라 다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소식도 이 갈릴리에서부터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천대받던 갈릴리 사람들을 통하여 큰일을 하셨습니다.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 있는 한경직 조직신학 석좌교수이신 이상현 박사께서는 갈릴리를 통하여 ‘이민 신학’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이 박사님에 의하면 갈릴리는 두 가지 특성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주변성(Marginality)입니다. 주류사회 속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회의 끝에서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던 ‘심령에 갈급함’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잃을 곳도 없고, 설 곳도 없었기에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천국’을 마음 문을 열고 받아들었습니다. 둘째는 ‘중간에 낀 상태’(Liminality)입니다. ‘주변성’은 사회학자 에버렛 손퀴스트의 용어이며, ‘중간에 낀 상태‘는 인류학자 빅터 터너가 처음 사용한 말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에 낀(In-Between) 상태가 liminality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창조적인 역사를 담당할 갈릴리는 어디입니까? 이민자들입니다. 전 세계 170여개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인 이민자들입니다. 우리는 주변에 살고 있는 비주류입니다. 중간에 낀 상태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국을 떠나 온 미국에서 끼지 못하고 있습니
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비주류로 땅 끝에 서있는 사람들과 이도 저도 아닌 끼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기회입니다. 땅 끝과 낀 중간은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는 기회입니다. 끝은 시작의 기회요, 끼어있음은 중앙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민자 여러분! 주님과 함께 중앙 무대
로의 이동을 체험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도 에셀 나무를 심으며…
글 : 호성기 필라 안디옥 교회 담임 목사
삽화 : 오지연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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