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 규혁아!
아들아 아비가 죄인이다. 잘못했다. 살아있을 때 엄하게 키우느라 어린나이에 하고 싶은 것도 못하게 한 것이 몹시도 맘에 걸리는 구나. 어긋난 삶을 살지 않게 하려고 무척이나 엄하게 키웠는데 지금에 와서야 차라리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게 했으면, 삐뚤어 나가도 살아만 있다면
죽는 것보다 훨씬 좋으련만…
하늘나라에 가서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맘껏 하고 살기 바란다. 못다 이룬 꿈도 펼치고 아비 눈치 보지 말고 원 없이 살아라.
그리고 아버지! 손자 규혁이가 할아버지 곁으로 갔습니다. 몸과 마음이 많이 다쳐서 갔으니 아버지가 손자의 마음과 몸을 잘 보살펴 주세요. 네 아버지.따스한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아들의 방문을 연 최상수씨는 고 최규혁 하사의 사진을 보면서 마음속에 편지를 써내려갔다.
추모행사 준비로 바쁜 메모리얼데이 행사 준비 땐 잠시 아들 생각을 잊지만 행사가 끝나면 다시 쓰린 가슴을 감싸 안고 몇 년을 더 괴로워해야 할 지 모른다. 전사 소식과 장례식을 치를 때까지는 쇠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멍했지만 이제는 마음속에 파고드는 아픔이 더해 어렵고 괴로울 따름이다. 소망이 있다면 목숨을 주고라도 다시 살리고 싶은 생각뿐이다.
이젠 방학이나 짬이 나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올라오는 손자, 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해주고 살 생각 밖에 없다.
6살이 된 손자 제이슨은 아들을 많이 닮았다. 손주와 매일 전화를 한다. 내가 누구지?물으면 또렷한 말로 할아버지하고 대답하는 것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수영장에도 같이 갔다. 손자와 살을 비비면서 놀아주는 시간이 꿈처럼 느껴진다. 아들과 손자가 이렇게 노는 모습을 수영장 밖에서 지켜봤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모르게 손자를 품에 안
고 바라보는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아들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방에서 손자와 함께 자는 시간에 할아버지가 물어봤다.
제이슨 아빠 기억나니?
네, 아빠가 이라크에 있을 때 전화 통화 했어요. 아빠는 하늘나라 갔어요. 아빠가 보고 싶어요.
최상수씨에게 가장 기억이 남는 최규혁 하사의 모습은 성장한 모습도 아닌 어릴적 개구쟁이 짓을 하고 씩 웃는 초등학교 4~5학년 때까지의 모습이다. 장성한 후 아들의 결혼식 때 부모로서의 뿌듯함을 느꼈지만 어릴 때 모습이 제일 생생하다. 지금은 살아서 무엇하나 이런 생각 밖에 없다. 아내와 자식이 있을 때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있었지만 이젠 그마져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주말이면 매일같이 워싱턴 알링턴 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아들을 보러 간다. 네게 못 다한 정 손자, 손녀에게 다 전해 줄게, 편히 쉬거라며 묘비를 쓰다듬고 발걸음을 돌
린다.
▲고 최규혁하사는 미 육군 공수특수부대로 지난해 10월 28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차량 폭발로 전사했다. 부친 최상수씨는 초대 웨체스터한인회 회장을 지냈으며 지역한인회연합회장을 역임했다. <김재현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