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포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최근 작고한 한국 수필문학의 거성 피천득 선생은 자신이 평생을 바쳐 사랑했던 수필의 고결함과 우아한 멋을 청자로 만든 연적에 비유했다. 수필로 쓴 ‘수필론’인 ‘수필’이란 작품의 첫 머리에서다. 피천득 선생의 글에 나온 연적(벼룻물 담는 그릇)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 바로 종이, 붓, 벼루, 먹 등 문방사우(文房四友). 선비의 서재에서 사용되는, 선비의 삶과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도구들이다.
벼루 붓 먹 연적…
문방구 수집·감상하는
이색모임‘사우회’탄생
원숙한 수필적 삶 추구
이들 문방사우와 연적, 문진(종이나 책을 누르는 데 쓰는 문방구), 인석(도장 재료) 등을 수집하고 즐기고 함께 모여 감상하는 이색 모임이 남가주 한인사회에 생겼다. 알려진 바로는 미주 한인사회에서 처음이다.
지난 달 하순 가든그로브의 한국일보 문화센터에서 첫 모임을 갖고 탄생한 ‘사우회’. 더 많이 이루기 위해, 더 많이 잡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성취지상주의 시대 속에서 삶의 여백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소박한 모임이다.
메모리얼 연휴 기간이었음에도 불구, 첫 모임에는 중국인 1명을 포함 24명이 참석, 제각기 가져온 새, 개구리 등이 조각된 10여점의 벼루를 완상하며 대화하는 행복을 누렸다. 회원들은 또 하농 김순욱 미주한인서예협회장의 특강을 들으며 벼루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혔다.
김 회장에 따르면 벼루는 붓글씨를 쓰는 데 꼭 필요한 네 가지 도구의 하나로 약 2,000년 전 중국에서 고안되었으며, 한자 문화권인 중국, 한국, 일본, 월남 등에서 지식층의 생필품으로 사용돼 왔다. 중국에는 단연, 섭연, 홍사연을 비롯, 대표적인 벼루 30여종이 있으며, 한국의 경우 충남 남포의 오석연, 평북 위원의 녹석연, 충북 단양의 자석연 등이 유명하다. 벼루는 재료인 돌의 고유 빛깔과 무늬가 갖는 아름다움에 장인들의 창작혼이 담긴 섬세한 조각이 더해져 예술작품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중국에서도 좋은 벼루 수집 붐이 일면서 가격도 치솟고 있다는 것이 김회장의 설명이다.
지난 봄 중국 여행시 구입한 단둥산 홍사연 등을 모임에 가져온 사우회 오동석 회장은 “벼루의 경우 중국과 일본에는 동호인 모임이 꽤 있으나 한국에는 매우 드물다”면서 “당초 벼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려 했으나 소장자들이 많지 않아 지, 필, 묵, 연적, 문진 등을 모두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격의 없는 만남들 통해 이들을 감정 평가하는 안목을 기르자는 것이 사우회의 활동 목표”라며 “첫 모임에서 회원들은 벼루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에 반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사우회는 벼루를 포함한 이들 문방구의 산지를 돌아보는 여행도 꿈꾸고 있다.
사우회는 김 회장이 붓글씨를 지도하는 하농서회를 중심으로 출범했으며, 앞으로 3개월 정도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질 계획이다.
이 모임은 수월수월 벼루에 먹 가는 소리와 은은한 묵향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 옛것에 대한 사랑을 통해 온고지신의 지혜를 배우고 원숙한 수필적인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의 동참을 기다리고 있다.
문의 (714)222-3258, ohdongsuk@gmail .com 오동석 회장
<김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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