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오후 시아버지께서 응급 병동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디스크로 인해 갑자기 찾아 온 엄청난 통증으로 앉지도 서지도 못하셔서 응급실에 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는 새벽까지 잠 못 이루고 그 날 목 놓아 울어버렸다. 정말 그렇게 눈물이 안 멈추고 긴 시간 울어보기는 태어나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대학에 떨어졌을 때도 나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울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쏟아졌었다.
그 날 내 아이가 울고 있는 내게 물었다. “엄마, 친할아버지께서 아프신 것이 아니라 외할아버지가 아프신거예요?” 분명 친할아버지 다리가 아프다고 했는데 엄마인 내가 너무나 많이 우니 외할아버지인가 생각이 들었단다. 그러며 “엄마, 엄마는 친할아버지 사랑하세요?”라고 뜬금없이 내게 질문을 하였다. 갑작스런 질문에 나도 내게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시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처음으로 구체적이게 시작되었다.
내가 시아버지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태어난 지 25 년이 지나서였다. 태어난 지 25년이 지나도록 내가 그 집을 방문하기 전까지 같은 땅 같은 하늘에서 살았는데도 우리는 만나적도 말을 해 본적도 없었다. 어쩌면 25 년 동안 어디선가 한번쯤은 우리가 부딪쳤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서로 아버지와 자식이 될 줄 몰랐었다.
물론 나와 시아버지가 만난 처음 그 날 조차도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저 친구의 아버지로 아들의 친구로 만나게 되었었다. 그 때는 그랬다. 그리고 이제 11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내 아들의 질문으로 갑자기 나는 내 시아버지를 얼마큼 사랑하고 있는지 처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당신은 얼마큼 시아버지를 사랑하시는지요?‘
우습지만 심각하게 나는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 찬찬히 생각했다. 내가 시아버지를 얼마큼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물론 내 시아버지가 날 낳으시고, 기르지 않으셔서 함께한 추억은 적고 내게 주신 사랑도 내 부모보다 적겠지만 가만히 짚어보니 분명 우리 둘 사이에는 무언가 있었다.
아버님이 앉으시기 어렵고, 걸으시기 힘드시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소식에 내가 그리 서글프게 울게 된 것은 아버님께 받고 내가 드린 사랑 때문만으로 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못 다한 사랑 때문에 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받은 사랑을 떠올리기보다 내가 못다 드린 사랑이 나를 울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유학으로 이곳에 온 후로 국수를 좋아하시는 아버님께 국수도 못 말아 드린 것 같고, 한 동안 많이 못 뵌 것도 아쉽고, 남편 공부 중이라고 아버님 겨울 잠바도 제대로 사 드린 적이 없는 것 같고, 아직까지 좋은 곳 여행도 못 시켜 드린 것 같고, 늘 마주하면 할 이야기가 많은 아버님과 나는 와인과 함께 마음껏 마주 앉지도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아버님만 와인을 드시고 나는 주로 이야기 담당이지만. 이런 저런 생각에 나는 아버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못 다한 사랑이 얼마큼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버님과 대화할 때 나도 모르게 가끔 “아버지” 라고 부를 때가 있다. 그러면 내가 먼저 멋쩍어 배시시 웃지만 이렇게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니 나의 깊은 마음이 시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호칭이 뭐 중요한가 싶다. 내 아버지도 아버지요. 내 시아버지도 내 아버지인데 두 분 아버님이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사랑? 논리정연하게 생각 필요도 없었다. 그냥 아버지는 아버지인 것이다.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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