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길’이라는 노래는 어린 시절 나와 내 동생이 곧잘 부르던 노래다.
아버지 손에 어머니 손에 매달려 들로 산으로 거닐며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심심할 때 부르기도 했고, 때론 어디를 다녀오다 늦은 밤 운전을 하시게 된 아버지의 졸음 방지용 노래로 목소리 높여 부르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노래를 아주 좋아했는지 그리고 이 노래를 언제 누구에게 배웠는지에 대하여는 기억나는 것이 없는데 어린 시절 나와 내 동생은 꼭 이 노래를 때마다 불렀던 것 같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짚어보면 이 노래를 부르면 무언가 아주 감성적인 노래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쾌활한 느낌보다는 무언가 다소곳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에 나는 이 노래 부르기를 주저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노래를 다시 부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내 아이가 그 때의 내 나이가 되면서부터 가끔 이 노래가 다시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내 아이의 나이에 내가 내 동생과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이곳에서 동생은 한국에서 우리가 어렸을 때 마주하고 ‘과수원 길’ 노래를 부르던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있다. 그러며 동생 아이도 내 아이도 이 노래를 알고 있을까 우리가 가르쳐주었을까 하고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이 노래는 우리에게 노래이기에 앞서 우리의 기억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시절 그 기억으로.
이곳에서 영어노래를 부르며 자라는 내 아이. 내가 내 아이 시절에 즐겨 불렀던 “텔리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라는 노래도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라는 노래도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겨울바람 때문에 꽁꽁꽁…” 이라는 노래도 내가 가르쳐주기 전에는 내 아이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몇 해 전 아이가 프리스쿨에 다니게 되면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것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처음 아이 학교라고 갔던 그 때 스토리타임에 엄마와 아이가 같은 동요를 부르며 마주 웃는 것을 보게 되었다. 모든 아이와 엄마들이 마주보며 ‘너도 이 노래 아는구나? 나도 아는데’라고 눈으로 이야기하며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주 쉽고 귀에 익은 ‘반짝반짝 작은 별’조차도 어린 시절의 나는 영어노래로 불러본 적이 없었으니 모두 합창을 해도 나는 아이가 노래 부르는 것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이상한 느낌의 그 첫 순간이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아주 생생히 떠오른다.
참 슬펐다. 이상하게 정말 슬펐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것, 같은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는 것이 그냥 슬펐다. 그런 후 여러 가지 영어 노래를 부르려 노력했지만 잘 안 되던 나는 아이에게 내가 어린 시절 불렀던 노래들을 틈틈이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함께 산책을 하며 같이 마주 앉아서 또는 장을 보며 나는 아이에게 한 소절 한 소절 노래를 불러준다. 발음이 어색한 내 아이가 내 기억 속에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리고 함께 부른다. 부모와 아이가 아주 다른 곳에서 아주 다른 모습으로 자라게 되는 우리들이 어쩌면 가장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제부터인가 들기 시작했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우리는 정말 마주 보며 생긋 웃게 되었다. 눈으로 말도 한다. ‘너도 아는구나? 나도 아는데’ 라고. ‘과수원 길’ 노래 속 가사 같은 얼굴을 하고 말이다.
마치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에 과수원 길.‘ 처럼 생긋.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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