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의 친지로부터 시애틀의 ‘훼드랄웨이’ 길에 있는 OO교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연락두절된 후배를 그 교회에 봤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필자는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훼드랄웨이가 아니라 페더럴웨이고, 길 이름이 아니라 한인시장(박영민 씨)이 있는 한인밀집 도시의 이름이라고 친절히 일러줬다.
어찌된 영문인지 페더럴웨이 지역 한인교회들은 지명을 한결같이 ‘훼드럴웨이’나 ‘훼더럴웨이’로 표기하고 있다. 한인전화부를 보면 ‘페더럴웨이’로 바르게 쓴 교회는 하나도 없다. 상호도 마찬가지이고, 심지어는 일부 신문도 ‘훼드럴웨이’를 고집한다. 교회이름과 상호는 엄연한 고유명사이므로 본보가 마음대로 고쳐 써줄 수도 없다.
훼드럴웨이 외에도 family를 ‘홰밀리,’ five를 ‘화이브,’ festival을 ‘훼스티벌’로 표기하는 등 ‘f’를 ‘ㅎ’으로 무조건 대치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 영어는 각각 ‘패밀리,’ ‘파이브,’ ‘페스티벌’로 써야 맞다. ‘f’가 얼핏 ‘ㅎ’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ㅍ’소리에 더 가깝다. 본국의 외래어 표기법도 그렇게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어발음을 한글로 완벽하게 표기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한글에는 영어의 F, V, Z에 해당하는 자음이 없고 R과 L은 머리글자이든 받침이든 모두 ‘ㄹ’로 쓴다. fan(부채)과 pan(접시)은 똑같이 ‘팬’이고, boys(소년들)와 voice(목소리)도 똑같이 ‘보이스’이다. rice(쌀)와 lice(이)도 구별 없이 ‘라이스’로 쓴다. ‘th’와 ‘ph’는 한글로는 표기할 방법이 없다. ‘thank you’는 ‘땡큐’로, ‘photo’는 ‘포토’로 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일본인들이 taxi를 ‘다꾸시,’ truck을 ‘도락구’ 발음으로 표기하고. 중국인들이 시애틀을 ‘서아도(西雅圖),’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樂)’ 발음으로 표기하는 것에 비하면 한글의 영문 표기력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외래어 표기법은 몰라서 틀리기보다는 잘못된 발음을 그대로 쓰기 때문에 틀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대표적인 예가 ‘salmon(연어)’이다. 십중팔구 ‘샐먼’이라고 발음하지만 ‘새먼’이 맞다. 애리조나의 남부도시 Tucson도 ‘탁손’이 아니라 ‘투산’이다.
한인신문의 안내광고란을 보면 메니저, 메케닉, 카텐, 라운드리, 웨이츄레스, 카렌다, 프라자, 쇼파, 캐더링, 월페어 등 잘못된 발음의 표기가 수없이 눈에 띈다. 이들은 각각 매니저, 미캐닉, 커튼, 런드리, 웨이트리스, 캘린더, 플라자, 소파, 케이터링, 웰페어로 표기돼야 맞다. 또 ‘century’가 ‘센추리’라고 해서 ‘country’를 ‘컨추리’로, ‘control’을 ‘컨추롤’로 발음하는 사람이 있는데 ‘컨트리’와 ‘컨트롤’이 맞다.
이민 온 후 한동안 언어장벽에 시달린 한인들이 영어에 조금 익숙해질 만하면 이번엔 모국 말과 글이 오락가락한다. 이민경력이 오랜 사람일수록 외래어 표기법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한글 철자법마저 잊어버려 이중고를 겪는다. 이승만 대통령처럼 “말과 글은 뜻만 통하면 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기는 있다. 지금도 인터넷 채팅방엔 젊은이들의 엉터리 한글이 홍수를 이룬다. 문화민족답지 않은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오는 9일은 600년 전에 훈민정음을 반포한 세종대왕의 위업을 기리는 한글날이다. 세종은 “나랏 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짜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 할쌔(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하므로)…”라며 한글창제 이유를 밝혔다. 세종이 지금 살아있다면 “나랏 말싸미 미귁(美國)에 달아…”라며 정확한 외래어 표기법을 만들었을 듯싶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문자가 사용되지만 한글만큼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는 단연코 없다.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록된 한글을 원칙에 맞춰 품위 있게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 민족 모두의 의무이자 세종의 성덕에 보은하는 길이다.
자녀들의 한글교육에 열성을 갖자. 그리고 그에 앞서 부모 자신부터 정확한 한글 표기법을 익히자.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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