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맥아더에 대한 통렬한 비판
지난 100년 간 한국 역사에서 한국 전쟁만큼 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한반도 전역에 큰 파장을 미친 사건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한국에서 한국 전쟁은 점차 잊혀진 역사가 되어 가고 있다. 북한을 자극하지 말자는 소위 ‘햇볕 정책’의 부산물이다. 미국에서도 이 전쟁은 ‘잊혀진 전쟁’으로 불린다. 숱한 인적 물적 희생을 치르고도 결과는 무승부로 끝났고 사람들은 무승부를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망각을 깨는데 일조할 책이 최근 출간됐다. 데이빗 핼버스탬이 쓴 ‘가장 추운 겨울’(The Coldest Winter)이 그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역사는 인간의 노력과 운의 합작품이다. 아무리 인간이 애를 써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헛수고로 끝나고 만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일요일 새벽 남침을 감행했을 때 객관적인 상황은 ‘게임이 끝났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었다.
북한은 나치를 물리친 소련 군대에 의해 잘 훈련되고 당시 최강이던 소련제 T-34 탱크와 미그기 각 100여대로 무장된 병력을 갖고 있었다. 거기다 김일성은 10여년 동안 만주에서 게릴라 지도자로 활동하며 한 때 일본에 의해 최고 현상금이 내 걸렸을 장도로 군사 경험이 많은 인물이다.
반면 한국군은 제대로 작동도 하지 않는 구식 무기로 무장되고 일자무식 농민들로 구성된 사병과 대체로 부패하고 무능한 장교 집단으로 이뤄져 있었다. 거기다 이승만의 맹목적 반공주의에 질린 미국은 군사 지원을 거의 끊은 상태였다. 이승만에게 현대 무기를 쥐어줄 경우 즉시 북침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한국군의 우수성을 칭찬했지만 미 국방부 내부 문서를 보면 한국군이 얼마나 낙후했는지를 미국도 잘 알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워싱턴의 트루먼 행정부나 일본의 실질적 통치자로 군림하고 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모두 한국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주한 미군 사령관인 하지 장군이 한국군 병력 증강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도쿄로 날아갔지만 맥아더는 그를 여러 시간 기다리게 한 후 “자네가 알아서 하라”는 한마디와 함께 돌려보냈다. 김일성이 손쉽게 남한을 점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미국 시각으로 24일 일단 북한의 침공 사실이 보고된 후 워싱턴의 반응은 김일성의 기대와는 달랐다. 트루먼 대통령을 비롯 당시 워싱턴의 실세였던 애치슨 국무장관 등은 ‘뮌헨의 굴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제2차 대전 발발 직전 당시 영국 총리였던 체임벌린은 뮌헨으로 날아가 히틀러와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히틀러는 체코 일부와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후 마침내 폴란드를 침공,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작은 도발을 방치하면 나중에 큰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 미국 정치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먼저 주한 미국인의 안전한 철수를 보장하기 위해 미 공군과 해군을 사용한다는 결정이 내려지고 전쟁 발발 닷새 만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뮌헨’의 기억이 없었더라면 한반도의 운명은 아마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처음 탱크를 앞세운 인민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이던 한국군은 이를 갤 수 있는 신형 바주카가 도착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했다. 마침내 9월 맥아더 일생 일대의 걸작 인천 상륙 작전이 감행되고 인민군이 무너지면서 유엔군과 한국군은 38선을 넘어 압록강가에 이르지만 이 때부터 일이 잘못돼 가기 시작한다.
중공군이 국경에 집결했거나 이미 국경을 넘었다고 보고가 올라오지만 승리에 도취한 맥아더는 이를 무시하며 미군 병사들 사이에는 크리스마스 전까지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분위기가 퍼진다. 그러나 11월 1일 운산에서 중공군의 기습을 받으면서 연합군은 급속히 무너지며 순식간에 서울을 다시 빼앗긴다.
핼버스탬이 이 책에서 가장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인물은 바로 ‘한국전의 영웅’으로 널리 알려진 맥아더다. 남북 전쟁 영웅의 아들로 사상 최우수 성적으로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아직도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최연소 장군 등 모든 기록을 깨며 승승장구한 맥아더는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기질을 갖고 있었으며 명목상 자기 상관인 정치인의 말을 무시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주위에는 아첨꾼이 아니면 배겨나지 못했고 더군다나 말년에는 귀까지 잘 안 들려 주요 회의석상에서도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예사였다. 한국전이 발발했을 때 그는 70세였다. 뒤늦게 트루먼에 의해 파면 당하기는 했지만 그의 이같은 오만 때문에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불필요한 죽음을 당했으며 한국전 피해도 커졌다는 것이 핼버스탬의 주장이다.
핼버스탬의 다른 책이 그렇듯이 이 책도 그가 이 책을 준비해 온 10년 동안 수많은 참전 용사들과 한 인터뷰가 생생한 현장감을 준다. 이 책의 모두에 나온 운산 전투 장면을 마치 가서 본 것처럼 기술한 것도 이런 증인들의 목소리에 뿌리박고 있다. 거기다 이승만, 김일성, 맥아더 등 한국전 주요 등장 인물의 삶과 워싱턴, 서울의 분위기 등이 입체적으로 묘사돼 있어 한국전 전체를 넓고 깊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위대한 저널리스트의 마지막 작품
작년 4월 북가주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데이빗 핼버스탬은 가장 위대한 미국 저널리스트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뉴욕타임스 기자로 일하며 월남에 파견된 그는 낙관 일변도인 미군 당국의 논평에 의문을 갖고 전쟁의 실상을 파헤친 객관적 보도로 30대에 퓰리처상을 받는다.
이 때 취재에 기초해 쓴 ‘가장 똑똑한 세대’(The Best and the Brightest)는 이상주의적이고 잘 교육받은 미국 지도자들이 어떻게 월남전 같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는가를 분석한 대작으로 베트남 전쟁에 대한 고전으로 일찍이 자리 잡았다.
그는 그 후에도 미국 언론사들의 실상을 그린 ‘기존 권력’(The Powers That Be), 50년대 미국을 조명한 ‘50년대’(The Fifties) 등 현대사 및 사회 평론에 관한 작품을 비롯 야구 등 스포츠와 소방대원 등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책을 남겼다. 사망 당일에도 22번째로 미식 축구에 관한 책을 내기 위해 축구 스타를 만나러 가다 변을 당했다.
그는 죽기 직전 완성한 ‘가장 추운 겨울’을 자기가 쓴 책 중 가장 잘됐다고 평가했으며 많은 평론가들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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