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도 고기 먹고 싶어
매주 토요일 기숙사로 승욱이를 데리러 가면 기숙사 디렉터에게 제일 먼저 듣는 말이 있다. “승욱이 지난주에도 밥 잘 먹지 않았어. 밖에서 사가지고 온 음식을 두 번 먹였어. 그래도 걱정 마, 비타민은 매일 챙겨 먹이고 있어. 그런데 집에 가면 밥은 잘 먹니?” “집에서도 별로 잘 먹는 편은 아니야.” 기숙사로 간 후에 잠자는 것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가는 것 같다. 그런데 먹는 것에는 아직도 저리 까탈스러우니 기숙사에서도 집에서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음식을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후각으로 스스로 판단을 내리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성격이 강한 건지 우직한 건지 어쩌면 저리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 내 아들이지만 나도 이해가 안 간다. 본인은 우직하게 먹지 않고 버티는데 주변 사람들이 더 안달을 내는 것 같다. 특히 기숙사 영양사는 나를 따라다니면서 영양에 신경 써달라고 한다.
똘똘한 녀석이 토요일 아침은 엄마가 분명히 치킨너겟을 사 오는 줄 알고 또 밥을 안 먹고 기다리고 있다. 매주 토요일 아침 기숙사 앞 버거킹에는 내가 스피커에 “헬로우~”만 외쳐도 직원이 되레 나의 주문을 미리 말할 정도다. 매주 토요일 거의 일년 넘게 가고 있으니 매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주문을 하는 나를 당연히 기억할 수밖에.
토요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스피치를 배우고 다음에 밀알 사랑의 교실에서 공부한 다음 집으로 오면 오후 3시30분이다. 그 시간에 친정엄마는 승욱이를 위해 부지런히 장을 봐다가 승욱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드신다. 이번 주는 갈비찜이다. 갈비찜을 만들면 일단 승욱이가 실컷 먹어야 그다음 서열에게 갈비찜이 돌아간다. 한 마디로 승욱이가 와야 맛있는 반찬을 먹을 수 있는 거다. 그럼, 주중에는 뭘 먹지? 온통 풀밭이다. 나물 일색에 김치는 종류별로 있고 된장찌개, 김치찌개, 시래기 된장국 등등. 남들은 웰빙으로 건강식으로 밥을 먹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을 매일 먹으면? 머리에서 뿔이 날 것 같다. 소처럼 말이다. 거기다 우리 엄마의 주 종목인 도토리묵은 잊을 만하면 올라온다(친정 엄마 밥이 고픈 분들에겐 정말 미안한 말이다).
우리 엄마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반찬 투정을 하지 않는 거다. 내가 생각해도 태어나서 여태까지 반찬 없어서 밥을 못 먹진 않았다. 그런데 우리 애들은 나랑 완전 반대인 것 같다. 매일 저녁 반찬을 만드는 할머니 옆에 서서 “할머니, 오늘은 무슨 밥 먹어요? 김치찌개요? 고기 좀 많이 넣어주세요.” 마치 가난해서 고기를 못 먹는 집 아이들처럼 고기에 집착을 한다. 특히 우리 큰아들. 미역국을 끓여서 똑같이 국그릇에 담아주면 “엄마, 나 고기 많은 거로 줘.”
승욱이가 오는 토요일 저녁은 식탁이 풍성하다. 푸짐하게 음식을 만들어서 승욱이가 기숙사로 돌아가는 주일 저녁까지 먹는다. 금요일 저녁에는 “어? 벌써 승욱이 오는 날이네? 내일은 뭘 해서 먹이지?” 엄마의 질문에 우린 평소 우리가 먹고 싶은 반찬을 주문한다. “너 먹고 싶은 거 말고, 승욱이 좋아하는 거!” 친정엄마의 기쁨이 승욱이 잘 걷어 먹이는 일이니 그나마 승욱이가 먹지 않는 것에 비해 스탠더드 멋진 몸매를 갖게 된 거 같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말도 못하고 있는 아들이 언제나 걱정이긴 하지만 주말이면 친정엄마가 살들이 챙겨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런데 승욱이가 이런 할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게 의문이다. 언제나 우리의 짝사랑만 받고 있는 승욱이가 언제쯤 우리 식구들의 마음을 알까? 오늘도 승욱이 외에 다른 아이들은 “할머니, 우리도 고기 먹고 싶어요”를 외치고 있다.
“김 여사님, 식탁에서 뱀 나오겠어요. 주중에 식탁의 주제를 보면 ‘에덴으로 돌아가자’인 거 같아요. 우리도 고기 좀 먹어요. 주말에 승욱이 올 때만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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