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인 파미가 학자금을 위한 저축 통장을 보여주며 미소를 짓고 있다.
수라바야 빈민가 서쪽에 위치한 매매춘 거리 ‘돌리’에 있는 한 업소. 유리로 된 창문 뒤로 소파에 앉아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보인다. 경비가 삼엄하고 비가 내리고 있어 사진 촬영이 쉽지 않았다.
월드비전 - 본보 사랑의 결연 인도네시아 빈민가를 찾아 4
빌딩숲 뒤에선 미성년자 성매매 버젓
<김동희 특파원> 본보가 연중 특집기획으로 펼치고 있는 ‘2008 현장을 가다-세계가 우리의 무대’ 시리즈의 네번째 순서로 인도네시아를 찾은 취재진과 월드비전 현지 답사팀은 아름다운 시골마을 쿠팡을 떠나 인도네시아 제 2의 대도시로 꼽히는 ‘수라바야’로 향했다. 높은 빌딩과 쭉쭉 뻗은 도로, 잘 정리된 화단, 분주한 차량들은 번화한 대도시의 첫인상으로 강하게 다가왔다. 과연 이곳에 우리가 도와야 할 ‘빈곤에 지친 아이들’ ‘꿈을 잃어버린 어린이들’이 살고 있을 지 의문이 먼저 들었다.
■제2도시 수라바야
수라바야는 쿠팡에서 비행기로 약 2시간30분 거리에 있는 해안 무역도시다.
도심엔 화려한 고층건물을 비롯하여 맥도널드, KFC 등 미국의 유명 프랜차이즈 요식업체들의 간판이 즐비했다. 다운타운 한 복판은 한국의 을지로나 종로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서울 도심과 닮아있었다.
그러나 한때 서울의 달동네가 그러했듯 이곳에도 도시 빈민촌이 존재한다. 아이들 역시 웃음엔 인색하진 않았지만 날카로운 눈빛에서는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도시 빈민가의 아픔은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뒤엉켜 풀어내기 힘들게 꼬여 있었다. 월드비전 관계자들은 오히려 쿠팡과 같은 시골마을이 도움을 주기가 더 쉬울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쿠팡은 농업기술은 낙후돼 있으나 자연환경과 각종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때문에 교육이나 재정을 지원, 기술을 향상시키면 가계 수익증대와 함께 커뮤니티도 발전한다.
하지만 도시는 간단치 않다. 수라바야의 경우 유동인구가 많아 늘 사회가 불안정하고 사람들은 도박과 폭력에 찌들어 있다. 빈부격차로 인한 빈민가의 빈곤은 하루하루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치열함이다.
아이들이 돈벌이를 위해 매매춘 현장으로 내몰린다. 학교는 뒷전이다. 가계 수입이 자녀의 매매춘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으니 부모들은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른 척이다.
오히려 미성년자들의 매매춘은 부모가 주도하거나 직접 화대를 관리한다는 설명에 답사단 일행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 전까지만 해도 ‘잘 사는 도시까지 우리가 도와야 하느냐’는 암묵적인 물음이 존재했으나 미성년자 매매춘 실태는 여기에 마침표를 찍기에 충분했다.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일행은 “어떻게 그런 일이…”라며 사실을 재차 확인하더니 이내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월드비전 수라바야의 레이첼 우토모 매니저는 지난 99년 연구 자료를 토대로 수라바야에서 매매춘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3,936명이며 이중 10% 이상이 12~18세의 미성년자들이라고 전했다. 무려 9년 전 자료다. 현재는 비공식적으로 업계에 약 5,000여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그 중 18세 미만은 30%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98년 자료에는 21세 미만의 매매춘 종사자 중 14~17세가 49.1%, 7~13세가 35.3%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18~21세는 13.8%로 세 번째로 많았다. 믿어지지 않지만 3~6세 어린이들도 1.8%라는 비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3~6세의 어린이가 어떻게 매매춘 대상이 될 수 있느냐. 나이가 정확하냐”는 기자의 거듭되는 확인에 레이첼은 ‘부모가 아이를 안고 있다가 돈을 받고 행인에게 준다’는 제스처를 해보이며 “거리에서 볼 수 있다”고 짧게 말했다.
빈민가 한 복판의 초라한 건물에서 만난 세 살짜리 어린이들. 손님들을 위해 귀여운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하룻밤 화대, 노동자 보름치 임금 유혹
■붉은거리 돌리
어둠이 내려앉은 도심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대로변 뒷길로 들어서자 흔들리는 음악소리와 함께 붉은 불빛이 새어 나왔다. 미니스커트에 탱크탑을 입은 여성들은 빨간색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화장을 하고 있었다.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일반 의자보다 다소 높은 붉은 소파에 앉아 있어 하얗고 매끈한 다리가 더욱 강조돼 보였다.이곳에서는 이들이 있는 곳을 ‘수바라야의 돌리’(surabaya dolly)라고 부른다.
길의 중간쯤에 다다르니 음악소리가 조금 커졌고 이내 화려한 조명의 스탠드바도 등장했다. 각 샵 앞에는 우람한 덩치의 남성 서너명이 서서 호객행위를 벌이는 중이었다.
일반적으로 화대는 2시간에 14~18달러. 여성의 나이와 서비스 종류(?)에 따라 가격은 크게 달라진다고 했다. 보통 매춘 여성이 하루에 버는 돈은 45달러 정도다. 상대 여성이 첫 경험인 경우엔 200~50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물론 나이가 어릴수록 화대는 더 많아진다.
일반적으로 수라바야의 마켓에서 하루 8시간 일할 경우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약 3달러, 주 6일 한 달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70달러)을 이곳에서는 단 이틀이면 가질 수 있는 셈이다.
돌리를 찾는 남성 중 외국인과 내국인의 비율은 40대60 정도 된다고 했다. 무역이 성행한 도시라 외국인뿐만 아니라 타지의 사람들도 수라바야를 많이 찾는다고. 인근 지역의 고위 공무원들도 업무상 왔다가 돌리를 거쳐 가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역개발 통해 주민의식 개선
2002년부터 수라바야에서 지역개발사업(ADD)을 시작한 월드비전은 돌리 스트릿 주변에 있는 큰텡 디스트릭과 테갈사리 디스트릭을 중심으로 교육, 건강, 경제, 복지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각종 프로그램과 커뮤니티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다운타운의 일부이기도 한 큰텡과 테갈사리 지역은 도시의 가장 화려함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빈민촌이 형성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라바야 31개 디스트릭 중 인컴이 중간 이상이다. 빈부격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월드비전은 아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줄이기 위해, 지역 주민들에게 “가까운 이웃을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지역 개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학자금 저축, 재활용 상품판매, 협동조합 기술 지원, 아동영양 및 교육 프로그램 지원 등이 대표적이며 주민들의 의식변화를 위해 마약이나 자녀 교육 등에 관한 캠페인도 꾸준히 열리고 있다.
수라바야 인구는 약 300만명(낮에는 500만)이며 약 2,333명의 어린이들이 미주 후원자들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도시 빈민가에서 만난 아이들.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눈빛은 매섭다.
극심한 빈부격차, 멍든 동심 치유 서광
일부선 유흥비 물쓰듯 쓰지만 한달 3달러 학비 걱정 빈민도
인도네시아 제2의 대도시 수바라야는 자연 속에서 알록달록 천연색을 자랑하던 쿠팡과 달리 흑과 백이 명확한 도시다.
높이 솟은 고층건물 뒤엔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주택이 즐비했다. 50달러만 다운페이하면 살 수 있는 오토바이와 수백달러로도 부족할 일본산 새 자가용이 함께 달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하룻밤 향락으로 500달러를 쓰지만, 다른 이는 한 달에 3달러가 없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못한다.
그러나 짙은 어둠 사이에서 희망의 빛을 만났다. 미주 후원자들의 사랑으로 어느새 청소년이 된 후원 아동들이 자신이 받은 사랑을 커뮤니티 어린이들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동생들이 좋다”며 자원봉사를 자처한 이들의 행복한 미소 속에서 수라바야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오토바이가 주 교통수단인 수라바야 시장의 모습. 사람들이 가정에서 쓰는 오일을 구입하기 위해 모여 있다.
월드비전 통해 무용가 꿈 성취
■ 무용교사 된 트룰리
수라바야에서 머무는 1박2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전통무용가 트룰리 아구스틴(16)과는 두 번이나 마주쳤다.
첫 날 트룰리는 교태가 넘치는 전통무용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두 번째 그녀를 만났을 때는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였다.
월드비전 후원아동인 트룰리는 세 살 때부터 무용을 시작했으며 지난 2006년부터는 ‘파두락사’라는 무용모임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파두락사’는 월드비전이 후원하는 애프터스쿨 형태의 모임이다.
월드비전은 개발지역 내 무용, 영어, 스포츠 등 각종 교육 프로그램 활동을 장려하고 학생들의 학비나 교사들의 월급을 지원, 보다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누리도록 하고 있다.
트룰리의 어머니 아스투틱(62)은 “월드비전의 후원으로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잘 성장했고 시간이 지나도 결코 마르지 않는 지식과 기술(무용)을 배울 수 있었다. 엄마로서 매우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월드비전 후원자 아동인 트룰리(뒷줄 오른쪽 끝)가 자신에게 전통무용을 배우는 제자들과 웃고 있다.
봉사의 삶 배우는 청소년들
■ 자원봉사 4인방
수라바야 카파사리마을에 있는 ‘차일드 센터 액티비티’에는 중·고등학생 형·누나들이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커뮤니티센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월드비전은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센터를 만들 수 있도록 돕고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 교육하는가 하면 매달 렌트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 4인방이 하는 일은 어린이들과 함께 소식지를 만드는 일. 각자의 아이디어에 충실하게 잡지를 오리고 붙여 2주에 한 번씩 또 다른 잡지를 만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종 액티비티 활동에 참여하여 아이들이 건강하게 뛰놀 수 있도록 도우며 컴퓨터 교육도 이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한창 놀고 싶을 나이, 방황도 할 시기. 어떻게 커뮤니티 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냐고 물으니 “노는 것보다 동생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이들 중 2명은 월드비전 후원아동이다.
빈민가 차일드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청소년들. 리에아(왼쪽부터), 랜디, 센다, 해피.
인도네시아 방문 월드비전 한인들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인도네시아 쿠팡과 수라바야를 방문, 월드비전 사업장과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삶 구석구석을 돌아본 방문단은 본보 취재진과 월드비전 관계자를 비롯해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 8명으로 구성됐다.
바이얼리니스트 주디 강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어린이들을 위한 바이얼린 연주로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였으며, 시카고에 거주하는 최명자 찬양 사역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현지 아이들의 메마른 가슴을 적셨다.
LA와 한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며 매달 월드비전을 통해 500명의 지구촌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있는 ‘I-Mar’ 크리스 김 사장은 지역 주민들에게 “나에게 삶의 목적을 주었다”며 도리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펜실베니아주 리하이밸리 한인교회 김전중 장로는 태권도 시범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이밖에도 월드비전 박준서 아시안 후원개발 부회장, 김경호 중서부 지부장, 김창만 필라델피아 운영 위원장이 동행했다.
용돈 모아 학자금 마련 운동
월드비전이 미주지역 후원으로 본격적인 지역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큰텡과 테갈사리 지역이 최근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했다.
시정부가 도로를 깨끗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인근 지역에 위치한 장터 폐쇄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수입이 크게 줄었고, 일부 초등학생들은 학생들은 매달 2.5~3달러 하는 학비 걱정에 등교를 하지 못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에 월드비전은 지역 은행과 손을 잡고 저축 프로그램을 커뮤니티에 소개했다. 은행측은 통장 개설비를 무료로 해줬고 돈이 차곡차곡 모이는 것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으로 저축 통장도 만들어줬다.
월드비전은 ‘GEMA300’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에게 매일 300루피아(3센트)씩 모아 꾸준히 저금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트리안드리아니 자얀티(14)는 “저금을 꾸준히 해서 학비를 마련하고 나중에는 꼭 여경찰이 되고 싶다”는 밝은 꿈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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