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머릿속에는 자기가 주인인 양 내 머릿속을 꽉 쥐고 들어찬 순간이 하나 있다.
이상하게도 별 제목도 없는 그 순간이 요즘 시도 때도 없이 나의 눈물을 쥐고 흔든다. 아무도 묻지 않은 그 순간을 무작정 그려본다면 이렇다. 지난 번 한국에 방문한 나는 어느 날 예정도 없이 엄마와 단둘이 다 늦은 저녁에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전철을 타고 동대문 시장 구경을 간 적이 있다.
그 날을 기억해 보면 여느 때와 달리 나는 말 수가 적었고 잠시 땅 위로 나오자 한강다리 위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본 기억과 내리기 전에 엄마와 동대문역에서 내릴지 동대문 운동장 역에서 내릴지에 대하여 작은 실랑이를 한 그 순간이 내 기억의 첫 부분이다. 물론 그 때 엄마보다 더 많은 전철을 이용했었던 내가 우겨 동대문역에서 내렸지만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동대문 운동장 역도 거기서 거기인 거리만큼 가까워 엄마도 맞았다. 그렇게 땅 위로 나와 보게 된 동대문의 밤거리는 언제나처럼 굉장히 낯익고 분주해 보였었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골판지에 쓰인 ‘현지직송’이라는 이름표가 달린 작은 트럭이 밤을 한 가득 이고 서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트럭이 요즘 그리 생각난다. 밤 한 되에 이 천 원. 밤을 좋아하는 엄마와 나는 그 작은 트럭 옆을 왔다갔다 하며 살까말까를 하다 나는 동대문 시장 구경을 하기도 전에 밤을 사서 들고 다니는 것은 좀 그렇다며, 아주 싸다며 사가자고 하신 엄마를 말렸었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엄마의 손가락이 말을 했다. “정연아, 청계천 다리 밑이 아주 예쁘게 변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인터넷에서 본 청계천 다리의 화려한 사진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정말 화려하네요.” 엄마의 말에 잠시 짧은 대답을 하며 또 걸었다. 그 날은 때 아니게 흩날리는 비도 잠시 내리다 멈췄다.
엄마를 따라 이곳저곳 다니다 엄마는 바지를 하나 고르셨고 나는 머리핀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늦으면 안 된다며 다시 전철을 타러 걷기 시작했고 그 중간에 길거리에 놓인 상점 중에서 엄마는 역시나 지나치지 않고 옥수수 세 개가 들은 한 봉지를 사셨다. 그리고 우리는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탔고 나는 두 개째 옥수수를 드시는 엄마 곁에 딱 달라붙어 앉았다. 엄마는 다시 한 번 옥수수 하나를 꺼내셔서 “정연아, 한 번 먹어봐라. 아주 맛있다” 하셨지만 별 생각 없던 나는 “저는 괜찮아요” 하고 웃으며 엄마를 바라보았는데 엄마는 “나. 우습지?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옥수수나 뜯어 먹고.” 멋적게 웃으시는 모습으로 내게 옥수수 먹는 자신을 대변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날 부끄러워하시며 옥수수 먹던 엄마가 요즘 제일 그립다.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 그 날의 엄마가 그 순간이 내 머릿속에 박혀 버렸다.
그래서 한 참을 생각해 보았다. 왜 하필 그 날일까? 왜 그 날의 엄마가 자꾸 생각나는 것일까? 그랬더니 아마도 엄마와 단 둘이, 단 둘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막연히 짐작을 하게 되었다. 항상 삼총사인 엄마와 나와 동생. 그런데 그 날은 동생이 바빠 우리 둘만 다녀온 날이다. 동생이 태어난 이후로 늘 셋이었던 나는 엄마와 단 둘이 어디를 다녀온 그 길이 무의식에 그리 좋았나 보다는 짐작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나는 요즘 겉모습은 서른 중반 아줌마이지만 하루에도 열 두 번 옥수수 먹던 울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이 왈칵왈칵 쏟아진다. ‘그 때 엄마가 밤을 사자고 하셨을 때 밤을 샀어야 했는데’ 하며 자꾸 눈물이 난다. 제목도 없던 그 날이 자꾸 생각이 나고, 참고 있는 울음이 터질까 전화로는 차마 말을 못 꺼내지만 요즘 나는 엄마가 보고싶어 미치겠다. 아마도 그 때 밤을 안사서 벌 받는 것 같다. 게다가 현지직송이었는데 말이다.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