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남자… 오텔로? 이야고!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팬 베르디는 맥베드, 오텔로 그리고 팔스타프 등 세편의 셰익스피어 희곡을 오페라화 하였다. 그중에서도 ‘오텔로’는 웅장한 스케일의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끌어내는 극대화된 효과로 박진감 있는 감동을 준다.
베르디는 ‘오텔로’를 작곡하면서 자신의 ‘성공 방정식’에서 벗어나 동갑인 독일 작곡가 바그너의 ‘음악극’ 양식을 과감하게 차용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이탈리아 오페라가 벨칸토(Bel Canto)로부터 베리즈모(Verismo·사실주의)까지로의 오페라 영역을 확장하게 되는 촉매가 된다.
주인공 오텔로 역은 가창력과 셰익스피어 배우의 연기력까지 동시에 요구되어 드러매틱 테너들에게 부담스러운 도전거리가 되어 왔다. 요즈음은 호세 쿠라가 프란체스코 타마뇨, 마리오 델 모나코, 플라시도 도밍고 등 역대 명 오텔로의 계보를 잇고 있다. 1986년 창단 개막시즌 때 도밍고의 주연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는 LA 오페라에서 3주일 전에 이언 스토리가 주연한 ‘오텔로’ 공연이 있었다.
주인공 오텔로는 무어 출신의 중세기 흑인 전쟁 영웅으로서 명문가의 백인 금발과 결혼하고 사이프러스 총독을 거쳐 베니스의 총독에까지 오르게 되는 ‘성공한 이민자’이다. 이런 인간승리의 주인공 오텔로도 최측근인 이야고의 간계를 감지할 수 없어, 사랑과 명예는 몰론 생명까지도 한꺼번에 잃는다. 이 영웅 파멸의 원인은 오텔로 자신의 유약한 성품과 더불어 아름답기만 한 그의 아내 스데모나가 남편의 심기와 주위 상황을 살피지 못하는 단순 답답한 성품을 이용하여 복수의 계략을 꾸민 이야고의 영악함에서 비롯된다.
베니스에서 착실히 출세가도를 달리던 문무를 겸비한 지장 거장 이야고는 용맹 하나로 시민의 영웅으로 급부상한 ‘외계인’ 오텔로가 자기의 걸림돌이 되자 스스로 이 흑인 상관 오텔로를 응징하는 복수의 화신으로 나선다. 그리하여, 신혼의 단꿈에 젖은 오텔로에게 ‘아내의 외도’라는 ‘의심’을 속삭여 그의 내면세계를 장악하는 악마성을 발휘하며 그를 파멸로 몰고 간다. 울부짖는 금관악기와 통분하는 타악기가 몰아치는 베르디의 관현악법 속에서, 정신없이 밀어붙이는 이야고의 함정에 빠져 떠내려가는 오텔로의 마음은 일편단심으로 머물 여유가 없다. 하지만 계획대로 복수를 이룬 이야고지만 자신도 예측 못한 갑작스런 종말을 맞게 된다.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는 이야고의 이런 ‘심리적 엔진’역할에 대한 조명이 없다면 ‘오텔로’는 그저 뻔한 치정 살인이야기로 기억될 것이다.
이렇듯 분노에서 비롯된 복수심은 필연적으로 인간관계를 파멸시키는 요인이다. 그래서 앞길이 꽉 막혀버린 ‘위기의 남자’ 이야고가 영웅 오텔로보다 나의 눈길을 더 끌었다. 만약 이야고가 자리 바뀜의 분함을 ‘천명’이라 순복하고 복수심을 접었더라면…. 인생의 모든 성공을 얻었음에도 사랑을 잃은 오텔로가 그 일편단심의 마음을 지킬 수 있었다면…
아~ 이야고의 속삭임이 내 귀에 들릴 때 나는 의심과 분노로부터 내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한 지혜의 왕 솔로몬의 말이 생각난다.
■김양희 음악박사: 음악 동호단체 ‘보헤미안’과 ‘LA 오페라 어소시에이션’의 음악감독 및 강사. 라디오서울 ‘김양희의 이브닝 클래식’ 진행자. sopyh@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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