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진 참사 현장의 절규가 태평양 건너에까지 들릴 듯 참혹하다. 마을마다 건물들이 폭삭 주저앉아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로 변하고 그 구석구석에서 가족을 찾으려는 울부짖음과 몸부림이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다.
삶의 터전이 완전히 붕괴된 폐허 위에서 사람들의 목 타는 갈구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사람·가족들의 안부였다. 똑같이 처참한 지진 피해자들을 천국과 지옥으로 가르는 것은 가족의 생사였다.
모든 것이 무너지니 오히려 분명하게 빛을 발하는 진리가 있다. 이 세상 최고의 가치는 사람·가족이라는 사실이다. 가족들이 몸 건강하게 옆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것을 모르고 사는 것은 얼마나 큰 어리석음인가.
매년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하고 가정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지만 요즘 가정들은 안녕하지가 못하다. 뿌리 얕은 어린 가정에서부터 수십 년 뿌리 깊은 가정들까지 흔들리고 해체되는 케이스가 너무 많다.
결혼을 ‘3·3·3·30’으로 나누어 말하는 사람이 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처음 3주는 서로 탐색을 하고, 3개월은 사랑을 하며, 3년 동안 싸우다가, 30년 동안 참으며 산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자면 젊은 부부의 이혼은 싸우다 못해 터지는 일, 나이든 부부의 이혼은 참다못해 터지는 일이 된다.
근년 뚜렷해지는 현상은 이혼 연령의 증가이다. 지난 달 발표된 한국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7년 한 해 동안 전체 이혼 건수는 줄었지만 55세 이상 ‘황혼 이혼’은 계속 늘어 7년 전의 2배가 되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는 부부가 줄어드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오래된 부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부부가 25년 이상 같이 사는 경우가 1950년대 결혼한 부부들은 70%에 달했지만 1970년대 결혼한 부부 중에는 절반이 못된다.
수십년 같이 산 부부들이 왜 이혼을 할까? 젊은 층은 의아해 한다. 살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 하는 반응이다. 반면 당사자들은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더 이상은 이대로 살고 싶지 않다는 주장이다.
한 모임에서 어느 부부의 이혼 이야기가 나왔다. 막내딸이 대학에 간 후 남편이 저녁 식탁에서 이혼서류를 내밀더라는 것이다. 50살 즈음의 전문직 종사자인 남편은 ‘자유롭고 싶다’고 했다. 갑작스런 일에 놀란 부인은 “전혀 간섭하지 않겠다. 다른 여자를 만나도 좋다. 이혼만은 하지말자”고 만류했지만 남편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제 모든 것에서 놓여나고 싶다. 한달간 생각해보고 결정해달라”고 했다.
결국 한달 후 부부는 이혼에 합의했고, 남편은 집과 매달 월급의 60%를 부인에게 주고 자신은 몸만 나와 조그만 아파트에서 조촐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이야기를 들은 중년층의 반응이었다. 여성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 남편은 왜 그런 생각을 못할까? 난 그 절반만 줘도 좋은데…” 이고, 남성들은 하나같이 “이해된다”고 했다.
반쯤 농담 섞인 말들이었지만 훌훌 털어내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가보다. 너나할 것 없이 흠 많은 남녀가 수십 년을 같이 살고 나면 왜 답답함이 없겠는가. 상대방의 이런 저런 결함, 잘못들, 좁혀지지 않는 이견, 그도 아니면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이 켜켜이 쌓이는 게 결혼 생활이다. 그 앙금·상처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듬으면 결혼은 지속되고 ‘그렇기 때문에’가 불현듯 고개를 들면 결혼은 흔들린다.
함민복 시인은 ‘부부’라는 시에서 부부를 긴 상을 같이 들고 가는 사람들로 표현했다. 긴 상을 맞들고 가려면 ‘내 멋대로’는 금물이다. 상을 드는 힘, 방향, 높이, 걸음의 속도 …를 상대방과 세세하게 맞추어야 한다.
‘황혼 이혼’은 대개 여성들이 주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많은 경우 일방적으로 참고 희생한 듯 한 억울함이 이혼을 불러온다. “긴 상을 수십년 도맡아 들어서 팔이 떨어질 지경이다”며 상을 탕 내려놓는 것이다. 긴 상을 같이 드는 지혜가 가정을 지킨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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