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고통의 신음 소리가 한인사회 곳곳에서 들린다.
차압 당한 집,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비즈니스, 욕망이 빚은 짐이 버거운 한인들이 목숨을 끊고 있다. 부동산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쓸쓸한 광야에 서서 이제나 저제나 하며 희망을 얘기하던 한인들이 더 이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턱턱 쓰러지고 있다.
본보가 입수한 한인 자살 제보는 지난 한달에만 모두 4건. 대부분 40-50대들이었고 이유도 간단했다. 돈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 남보란 듯이 살겠다던 야망이 결국 돈의 위력에 짓눌려 속절없이 인생을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스프링필드에 거주하던 A씨(55세·여)는 매달 2,000여 달러의 주택 페이먼트를 감당하지 못하자 끝내 자살을 택했다. 사이딩을 하는 남편과 재혼해 자식도 없이 살던 그는 성격도 명랑하고 인물도 좋아 주위에 호감을 주었던 사람. 주변 사람들은 “그가 집을 차압당하기 며칠 전에 목숨을 끊은 것을 보면 경제적인 문제가 원인이었던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여성의 가족은 장례비조차 제대로 마련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이어서 주위 교회와 이웃이 도움을 주었다는 후문이다.
메릴랜드 클락스빌에 거주하는 40대 중반 남성 B씨는 죽기 전 크게 부부 싸움을 벌였다. 가장인 남편의 수입이 변변하지 않다 보니 작은 일에도 다툼이 잦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날은 두 사람이 거의 감정의 끝에 다 달았다. 그리고 남편은 순간적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택했다. 인근 공원으로 가 목을 맨 것이다.
애난데일에 거주하던 50대 초반 남성 C씨 역시 한달 반 전 살던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목을 매는 방법으로 죽음을 맞았다. 미국에 와 음식점에서 오래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해보겠다는 야심도 있었지만 당시 그는 친척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애틀랜틱 시티 등을 전전하며 10만달러 이상의 빚을 지고 있는 상태였다. 사업의 꿈은 희미해져가고 도박의 족쇄가 거추장스럽기만 했던 C씨는 밧줄을 목에 걸어 가서는 안될 길을 가버렸다.
늦게 유학을 와 워싱턴 DC에 있는 식당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던 D씨의 죽음도 외롭고 애처럽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죽음은 사고 당일 밤 1시 경 이웃에게 겨우 발견될 정도였다. 사인은 심근 경색. 한국에 아내와 두 명의 자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시신은 한 때 가족들도 소재지를 잘 파악 못해 크게 당황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도 생활이 어려워 장례식장을 찾지 못했고 LA에 거주하고 있는 동서가 겨우 찾아와 장례를 마칠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과로한 데다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자주 폭음하며 몸을 돌보지 않은 것이 사망의 원인이 아닌가 보고 있다.
이렇듯 지난 한 두달 새 도미노 현상처럼 나타나고 있는 한인 자살 소식에 한인사회는 매우 당황한 모습이다.
경기 침체의 충격이 한인 커뮤니티를 총체적으로 흔들고 있다는 분석과 함께 더 이상 한인들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체면 문화, 겉치레 문화에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반성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털 것은 털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해보겠다는 의지를 다져야 하며 함께 난국을 헤쳐 나가자는 공동체 의식이 한인 커뮤니티 내에 진작돼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얼마 전 한인 불우이웃돕기 기금 모금 바자를 개최했던 ‘사랑나눔의터’의 조윤희 대표는 “장례비가 없는 정도가 아니다”라며 차마 밝히기 어려운 한인사회 속사정을 얘기했다. 그는 “최근 끼니를 잇기 어려워 쌀, 된장 등 음식을 만들어줘야 했던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라며 “이제 한인사회가 주위의 상처입고 멍든 한인들을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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