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공연을 가면 때때로 무대 정면 중앙에 자리잡은 2피트 남짓한 박스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프람터(prompter) 박스인데. 프람터는 가수에게 노래 가사를 상기시켜 주는 사람으로서, 노래 시작 직전에 입모양과 역할을 겸하는 오페라 진행에 필수적인 전문가이다.
카루소와 칼라스가 활동하던 시절에, 오페라 가수들은 한두번의 연주 바로 다음날 다른 도시로 가서 새로운 극장의 새 오페라 프로덕션에서 노래해야 했다. 그 짧은 준비기간 때문에 극장들은 프람터들을 고용하여 새로운 작품과 짧은 기간에 무대에 올려지는 연주의 약점을 보완해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재정적 문제와 무대 디자이너들의 요구로 인해 많은 극장들이 프람터 박스를 없애 왔는데, 또한 가수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충분한 준비가 된 때문이기도 하다.
근래에는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태리의 오페라 극장들도 프람터의 사용을 줄이고 있고, 영국이나 독일은 그보다 훨씬 더 적게 프람터를 사용하고 있손짓으로 가사를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언어학자와 지휘자의 다.
그런데 오히려 LA오페라에서는 프람터를 ‘실수없는 연주를 위한 악기’로 인식하는 지휘자 제임스 콘론의 주장으로 인해 프람터 박스가 무대 위에 자주 나타난다.
지난 4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가 공연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무대에서는 프람터의 덕을 단단히 본 ‘사고’가 생겼다. 이졸데 역을 맡은 소프라노 크리스틴 브루우가 황홀경에 몰입되어 노래하다보니, 상대역의 멜로디 라인까지 시작하여 버렸는데, 대사(노래)를 빼앗긴 상대는 어리둥절한 채로 머뭇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때 프람터 조나단 큐너는 프람터 박스로부터 기어 나와 미스 브루우를 향해 “Stop singing!”하고 소리를 쳐 꿈꾸듯 ‘남의 노래’를 부르던 가수를 깨워줌으로써 그 날의 연주는 가까스로 성공하였다. 공연을 마친, 미스 브루우는 “프람터들은 내게 신과도 같은 존재”라며 큰 실수의 위기에서 구해준 미스터 큐너에게 감사를 표했다.
내가 살아왔던 날들에서도 도취로 인해 이런 위기의 순간이 얼마나 많았었던가! 상대방이 말을 할 차례인데도 생각 속에 빠져서 나의 의견만 쏟아 내던 나를 자아도취의 꿈에서 깨워주곤 하시던 부모님들의 유머있는 프람터 역할이 있었다.
결혼초기에 남편은 내게 가장 냉철한 프람터였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함인지 모든 것을 예쁘게만 받아주는 ‘팔불출’끼가 조금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가끔 만나 대화하는 나의 친구들이 조심스런 비판을 할 때에는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는 잠언처럼, 친구의 ‘부드러운’ 충고 한마디가 힘 있게 들린다.
■김양희 음악박사: ‘보헤미안’ 및 ‘LA 오페라 어소시에이션’의 뮤직 디렉터.
라디오서울 ‘김양희의 이브닝 클래식’ 진행자. sopyh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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