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의 역사를 가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은 근래에 메타, 줄리이니, 프레빈 그리고 살로넨을 거치면서 지휘자에 따라 다른 성격을 보여 왔다. 줄리이니 시절의 LA 필을 알던 이들에게, 살로넨이 지휘하는 LA 필은 어떤 형태로든 충격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휘자의 음악적 출신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바이얼린과 첼로의 ‘역할’을 오가면서 음악의 내부를 형성하는 비올라 연주자 출신인 줄리이니는 이탈리아인의 뜨거운 피와 외유내강한 인품으로 견고하고 열정적인 낭만파 LA 필을 만들었다. 반면, 금관 오중주와 목관 오중주 양쪽에 다 포함되는 유연한 관악기인 혼(horn)을 전공한 살로넨은, 전위 작곡가로서의 실험정신을 융합하여 정밀하고 화려하면서도 쿨~한 LA 필을 만들어 냈다.
또한, 지난해에 디즈니 홀에 왔던 두다멜의 시몬 볼리바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하루 저녁에 세 명의 지휘자 아래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앙코르 직전에 깜짝 출연한 존 윌리엄스는 ‘스타워즈’를 지휘하여 밝고 화려한 ‘할리웃’ 색깔을 나타내 주었고, 마지막으로 바톤을 잡은 베네수엘라 음악교육 ‘엘 시스테마’의 창시자 아브레우 박사는 힘찬 약동감으로 짧지만 깊고 눈부신 감동을 주어 두다멜을 키워낸 ‘스승’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연주회 전체를 지휘한 두다멜은 노련함과 함께 젊은 에너지에 바탕한 신선한 프로그램으로 경직된 클래식 음악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며 연주자와 청중 모두를 ‘열광’으로 몰았다. 그로부터 약 한달 후 두다멜이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했을 때, 연습에 참여한 단원들이 두다멜에 매료되어 주고받은 이메일들과, 가장 비판적이던 옛 단원들까지 ‘젊은 번스타인이 돌아왔다’고 열광하는 바람에 음악회는 완전 매진이 되었다.
이렇듯, 각 분야 최고 경지에 이른 기악 연주자들의 공동체인 메이저 오케스트라가 기다리는 것은 훌륭한 자질을 갖춘 지휘자이다. 주위 연주자 친구들의 하소연(?)을 접해 보아도 ‘제대로 된’ 지휘자에 대한 갈증은 대화의 화제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연주자가 전해준 농담-- 지휘자 없이도 오케스트라 단원끼리 잘 연주하고 있는데, 어떤 지휘자가 엉거주춤한 지휘를 하는 통에 오갈 수 없는 ‘트래픽’이 생겨 합주가 엉겨버렸다. 그때부터 그 지휘자의 별명은 ‘프리웨이 경찰’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배꼽을 잡았다. 도움보다 방해가 되는 이런 지휘자를 ‘지해자’(知害者: 방해가 된다고 알려진 사람)라고 해야 할까?
생존위협을 받는 이 시대 오케스트라의 발전을 위해 요청되는 지휘자는, 전통과 혁신에 통달하고 신선하고 노련한 음악성은 물론, 비전과 경영 능력을 두루 갖춘 연예인의 외모를 지닌 사람일 것이다. 이런 자질을 두루 갖춘 살로넨이 지난 16년간 LA 필을 국제적으로 부각시켰고 이제 마지막 시즌을 아쉽게 남겨 두고 있는데, 그의 뒤를 이을 새 시대의 지도력을 갖춘 두다멜과 LA 필의 결합은 연주 공동체가 꿈꾸는 최상의 축복이다.
김양희
sopyh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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