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카파미술상 수상자인 비디오 아티스트 이재이의 작품 ‘목욕탕’시리즈 중 ‘백조’
나이애가라 폭포
● 2008 카파미술상 수상한 비디오 아티스트 이 재 이 씨
목욕탕의 싸구려 풍경 등
실존 않는 허구의 세계 표현
“독창적이며 재기 발랄”
심사위원 만장일치 선정
2008 카파미술상을 수상한 비디오 아티스트 이재이(Jaye Rhee·35)씨는 눈이 엄청나게 크다. ‘왕방울’이란 단어가 금세 떠오르는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는 우리가 늘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 눈은 그녀가 보는 것, 우리가 본다고 믿는 것의 허구성까지도 꿰뚫어 보는데,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카파상 수상작품인 ‘목욕탕’은 변두리나 시골에 남아있는 대중목욕탕의 타일 벽에 그려진 키치적 그림을 배경으로 ‘백조’ ‘북극곰’ ‘나이애가라 폭포’의 3개 연작으로 만들었다. ‘백조’에서 그녀는 하얀 타월을 머리에 감고 백조처럼 물속을 왔다갔다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나이애가라 폭포’는 우비를 입은 여러 사람이 폭포 그림을 구경하다가 한 사람씩 사라지는 모습을 찍었다.
“도대체 목욕탕 벽에 왜 백조가 그려 있을까. 백조는 아름다운가, 아니면 아름답다고 우리가 믿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가?”
“나이애가라 폭포에 직접 가보니 온통 쏟아지는 물안개 때문에 폭포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림에 그려진 나이애가라는 누가 본 것인가?”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이런 싸구려 이국적 풍경은 우리의 기억, 들은 바, 혹은 욕망에나 존재할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풍경이라고 이재이는 말하고 싶어한다. 이미지라는 건 믿는 만큼, 보고자하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작업은 욕망을 이미지로부터 떼어놓는 일이고, 이미지 없는 이미지를 경험하게 해주는 일이며, 가짜의 허구성을 벗겨내는 일이다.
올해 카파상 심사위원들은 몇몇 후보작을 놓고 고심했던 예년과 달리 이재이의 작품에 만장일치로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그들의 공통된 평은 이재이의 작품이 “단순명료하고 독창적이며 정교하고 재기 발랄하며 재미있다”는 것이다.
이재이의 작품 ‘음표’.
하워드 폭스(LA카운티미술관 큐레이터), 데이빗 페이글(LA타임스 미술평론가, 클레어몬트 대학원 부교수), 피터 프랭크(리버사이드 미술관 시니어 큐레이터, LA위클리 미술평론가) 등 이곳 미술계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심사를 맡았으니 그녀의 작품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겠다.
불행히도 그녀의 작품은 직접 보지 않고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니, 직접 보아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비디오 작가로 불리지만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이재이의 작품은 비디오, 오디오, 퍼포먼스, 설치, 사진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보는 사람에게 새로운 경험을 창조해 낸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친 이씨는 지난 2001년 ‘예술가의 책’이라는 작품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 분홍 풍선껌을 씹어 뱉는 일을 한나절 계속했던‘벚꽃’, 오선지 같은 줄 위에서 고무줄놀이 하는 소녀들의 동작을 비디오, 사운드, 사진으로 함께 전시한 ‘음표’, 2007년 갤러리 팩토리에서 보여준 ‘지상의 모든 애인들이 한꺼번에 전화할 때’ 등 일련의 특이하고 독창적인 작업으로 신세대 미술계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
시카고와 서울, 파리에서 4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지난해 열린 ‘제1회 고베 비엔날레’에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초청됐다.
한편 19일 카파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심사위원들은 특별히 카파(Korea Arts Foundation of America)라는 단체에 대해 특별한 경의를 표했다. 거의 2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꾸준히 재능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을 찾아내 거액의 상금과 전시기회를 지원하는 카파의 미술상은 미주한인 예술가들에게 마치 ‘아츠 올림픽’과도 같다고 찬사를 보낸 그들은 응모작들도 올림픽 수준이라며 한인 예술가들의 수준을 높이 평가했다. 카파는 한인 커뮤니티에서 재력있는 미술애호가들이 1989년 설립, 지금까지 11명의 수상자를 선정, 지원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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