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못하면 출전자격을 박탈하겠다”는 LPGA의 최근 움직임은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골프는 입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기술을 겨루는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영어회화 운운하는 것은, LPGA에 등록된 외국인 선수 중 거의 40%를 차지하고 성적도 뛰어난 한국 선수를 향한 제동장치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 전문 변호사를 선임해 제소하려는 흥분을 잠시 가라 앉히고, LPGA의 선전포고를 미국의 문화코드를 읽어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인간사회 어느 구석을 살펴도 개인의 성패 여부는 입담으로 귀결된다. 특히 미국 사회는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사람, 즉, 말하고 쓰는 것으로 자신의 표현이 정확하고 똑 부러지는 사람이 영향력이 있거나 리더로 인정 받는 문화다.
　4년 전에는 무명이었던 오바마가 오늘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스타덤에 오른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2004년 전당대회에서 존 케리를 지지하는 기조연설을 통해 청중을 사로잡는 뛰어난 말 솜씨를 보여 준 것이다.
　가난한 흑인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나 암울한 과거를 가진 오프라 윈프리의 인생을 180도 전환시킨 것 역시 사람을 끌어당기는 입담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영어에 능통한 한인청년의 고민을 상담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 동부의 유수한 투자금융 회사에 근무하는 그 청년은 “매일 아침에 진행되는 회의에 나는 아이디어는 많지만 발표력 부족으로 입을 열지 못해 다른 사람보다 진급이 늦다”고 토로했다.
영어를 못해서도, 아이디어가 없어서도,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훈련이 부족했던 것이다.
　
　대학 입학사정관들도 아시아 계열, 특히 한인학생들을 “무뚝뚝한 일차원적 학생”이라고 표현한다. 에세이와 인터뷰를 통해 다채로운 색깔을 나타내야 마땅한 자아표현이 서로 비슷하여 밋밋하고 싱겁다는 것이다.
　특히 말이 없는 학생을 한국적 사고방식으로는 “과묵하다”로 칭찬할지 몰라도, 적어도 대학진학 인터뷰에서는 무례하다고 취급 받는다.
　심지어 “이 학생이 나에게 화가 났나?”하고 의아해 하는 면접관도 있다. ‘말이 씨가 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등 말조심을 강조하는 문화에 젖어 무의식적으로 무거운 입을 중요시하느라 표현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에는 소홀했다.
　과학, 수학을 잘해 경시대회에서 입상했다고 언어 쪽을 소홀히 하는 학생을 종종 본다. 모든 지식의 생산, 전달, 분배과정에는 인간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과정이 버티고 있다.
　이래서, 의과대학에서, 의술은 좋지만 환자들과 유연한 소통이 부족한 생물학도 보다 영어전공자를 선호하고, 자연계 대학원에서, 설계도면은 잘 그려내지만 말과 글로 하는 설명이 부족한 수학도 보다 사회학 전공자에게 신입생 선발 시 우선순위를 준다.
　학교 성적이나 등수보다 우선적으로 강조되어야 할 ‘말 잘하는 훈련’을 많은 가정에서 외면하고 있다. 부모의 사사건건 간섭, 일거수 일투족 감시가 자녀의 의지와 감성을 억누르고 있다.
　오늘은 문제지 여기까지, 책도 몇 쪽까지 읽어라, 다음에는 이거 해라, 저거 해라로 자녀를 로봇처럼 취급한다. 또한, 무엇에든 자녀대신 대답해주고 대신 나서서 설명하는 바람에 자녀의 표현기회를 가로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가 인간의 역사를“억압의 역사”로 표현한 것처럼, 빈번한 가로채기와 간섭은 자녀로 하여금 억눌림 역사의 장을 쓰게 하는 것이다. 억눌림의 결과는 압사 아니면 반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