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저녁 눈산 위에 추석달이 휘영청 뜬다. 똑같은 보름달이지만 바라보는 사람마다 감회가 다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인도, 애인 얼굴을 떠올리는 청년도 있다. 달나라 여행을 꿈꾸는 호사가도, 달 색깔의 치즈피자를 연상하는 홈리스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어젯밤 거의 꽉 찬 달을 보며 엉뚱하게 과녁이 머리에 떠올랐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의 ‘신궁’들이 척척 명중시킨 둥근 과녁이 뇌리에 깊이 박혔거나, 아니면 반평생 미국에 살며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쏴대는 총잡이문화에 익숙해진 탓인지 모른다.
한인도 미국 물이 들면 활 대신 총질을 한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캠퍼스 총격사건을 일으킨 조승희(23)가 좋은 예이다. 7세 이후 줄곧 미국에서 자란 그는 작년 4월 자기가 다니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무차별 총격을 벌여 32명을 살해하고 29명에 부상을 입혔다.
미국 내에는 대략 2억1,000만 정의 각종 총기가 나돈다. 국민 1인당 총기 하나씩 갖고 있는 셈이다. 해마다 2만8,000여명이 총에 맞아 숨진다. 지난 2005년의 경우 매일 평균 46명이 총으로 자살했다. 전체 자살자 두 명중 한명 이상이 총기를 사용했다. 같은 해 어린이들(10대 포함)이 매 9시간마다 한명씩 총기오발로 숨지거나 총으로 자살했다.
미국은 총으로 세워진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포로 무장한 기병대가 창과 활뿐인 토착 인디언들을 도륙하고 땅을 빼앗았다. 그 전통 때문인지 지금도 산간 도로표지판은 말 대신 차를 타고 달리며 갈겨댄 총탄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 성인 5명중 2명(39%)은 집에 총을 한 개 이상 갖고 있다. 6명 중 1명은 장총·엽총·권총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한인들 눈엔 이런 총기가 백해무익해 보인다. 특히 권총강도를 겪은 자영업자들은 총을 보면 치를 떤다. 한국에선 스포츠용을 제외한 총기의 개인소유가 철저히 금지돼 있다. 그래서 총기살인사건도 탈영병들이나 이따금 일으킬 뿐이다. 미국의 이웃인 캐나다에선 지난 2006년 ‘고작’ 605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그 중 190명만 총기에 의해 피살됐다.
알고 보면 대다수 미국인들은 강력한 총기규제를 원한다. 지난 4월 퓨 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8%가 총기소유 권리보다 총기소유 규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승희 사건 직후 AP통신 여론조사에서는 87%가 총기사건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특히, 응답자의 55%는 총기규제법 강화를 공약하는 대통령 후보에 투표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관련법이 좀체 강화되지 않는 주된 이유는 막강한 미국총기협회(NRA)의 입김 때문이다. 회원 300여만 명을 거느린 보수집단으로 연방의회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활동을 벌이는 NRA는 “문제는 총이 아니라 사람이며 범죄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 총이 범죄에 사용되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면 음주운전의 도구인 자동차도 규제해야 한다고 우긴다.
높은 산, 깨끗한 물에 둘러싸여 평화스럽게 보이는 시애틀도 총기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바로 지난주 시애틀 북쪽 스캐짓 카운티에서 28세 청년이 쏘다니며 총질을 해대는 바람에 여성 경찰관 한명을 포함한 6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10년 전엔 김영수씨, 작년엔 염종진씨(포틀랜드)가 각각 강도 총에 쓰러지는 등 한인사회도 비극을 겪었다.
해마다 추석 보름달이 변함없이 떠오르듯 미국의 총기살인도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인의 87%가 한국처럼 총기소유를 일체 금지하는 데 반대한다. 권총판매만 금지하자는 법안에도 59%가 반대한다. 집에 총기를 두는 것이 안전하다는 사람이 47%, 더 위험하다는 사람이 43%이다. 한인들도 총기를 구입하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 갈피를 못 잡겠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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