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宇和島 屋’(우와지마야)
‘스끼야끼’라는 일본음식을 필자는 입보다 귀로 먼저 즐겼다. 오래 동안 노래이름으로만 알았던 그 음식을 70년대 말 한국도, 일본도 아닌 미국에서 처음 맛봤다.
당시 LA지사의 한 선배가 자취 연수생이었던 필자를 자기 집으로 불러 스끼야끼를 대접했다. 선배는 종이처럼 얇은 쇠고기를 보물인 양 보여주며 “특별히 다운타운 일본마켓에 가서 사왔다”고 생색냈다. 고기가 혀끝에서 살살 녹았고, 국물도 빌리 본 악단이 연주하는 스끼야끼 노래만큼이나 달콤했지만 필자의 입맛에는 솔직히 설렁탕만 못했다.
그래선지 그동안 일본마켓은 근처에도 가지 않은 필자가 우연히 시애틀 다운타운의 우와지마야에 들렀다가 그 선배가 왜 일본마켓을 들먹였는지 알 것 같았다. 그처럼 깨끗한 마켓은 처음 봤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쌌지만 그만큼 품질이 좋았다. 스끼야끼 고기도, 싱싱한 킹 연어와 구이덕도 있었고 한글로 쓰인 ‘모치’떡과 ‘신라면’도 눈에 띄었다.
최근 지구촌에 ‘멜라민 파동’을 일으킨 중국산 유제품을 시애틀에서 맨 먼저 자진 폐기한 마켓이 우와지마야였다. 이 마켓의 매니저가 TV 뉴스에서 “우린 매상보다 고객의 신뢰를 더 중시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장사꾼의 상투적 헛소리로 치부했다. 그러나 지난주 친지 업소 방문길에 선물을 사러 잠깐 우와지마야에 들른 후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어부출신 이민자인 후지마쓰 모리구치(24)가 1928년 트럭에 오뎅 따위를 싣고 타코마에서 일본인 노동자들에게 팔면서 상호를 우와지마야로 지었다. ‘우와지마(宇和島)’는 모리구치가 살았던 섬 동네 이름이고 ‘야’는 점포라는 뜻의 일본말이다. 행상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채 2차 대전이 터졌고 모리구치 가족은 캘리포니아의 일본인 수용소에 끌려갔다.
전쟁이 끝난 뒤 모리구치는 전 재산 400달러를 털어 차이나타운에 구멍가게 수준의 우와지마야를 재개했다. 1962년 세계박람회가 열린 시애틀센터에도 가게를 열어 재미를 톡톡히 봤으나 모리구치는 그해 사망했다. 85세까지 스시를 직접 만들며 가게를 도왔던 그의 부인 사다코(유명 조각가 조지 쓰타카와의 누나)는 40년 뒤인 지난 2002년 사망했다.
유산을 분배받은 네 아들 중 차남인 토미오(72)가 1965년부터 작년까지 경영을 맡으면서 우와지마야는 부쩍 컸다.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 이민자들이 폭증하자 토미오는 업소를 늘려 일본만이 아닌 범아시안 식품점으로 전환했다. 2000년엔 3블록에 걸쳐 ‘우와지마야 빌리지’라는 서민용 주상복합단지를 세우고 업소도 6만6,000 평방피트로 더 확장했다.
토미오는 수퍼마켓 비즈니스에 문화차이가 문제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까다로운 고객일수록 믿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을 찾기 때문에 우와지마야는 정통성을 지상최대의 목표로 삼는다고 토미오는 설명했다. 현재 우와지마야의 재고 품목은 2만여종에 달하며 그중 1만2,000여종이 일상적으로 진열된다. 전체고객 중 거의 40%가 비 아시아인이다.
종업원 430여명에 연간 9,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우와지마야가 이 달로 창립 80주년을 맞았다. 시애틀, 벨뷰, 비버튼(오리건)의 세 매장에서 오늘 큰 잔치가 벌어진다. 시애틀 본점에선 이미 지난 15일 아침 그렉 니클스 시장이 하객으로 참석한 가운데 축제의 킥오프 행사가 열렸다. ‘타이코’ 연주와 요리시범 등 각종 문화행사가 월말까지 이어진다.
우와지마야가 본보의 광고주래서 봐주려는 것이 아니다. 광고규모로는 한인마켓들이 훨씬 크다. 트럭행상을 전국에서 손꼽히는 아시안 마켓으로 키워낸 모리구치 가문의 경영철학을 한인업주들이 배워 빠른 시일 안에 우와지마야를 능가하도록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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