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피아니스트들이 ‘교과서’로 삼는 연주자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는 이 시대 최고의 바흐 해석자로 유명하다. 영국 왕립 음악원이 바흐 작품의 최고 해석자에게 수여하는 ‘바흐 상’을 받은 그는 글렌 굴드 이후 최고의 바흐 연주자로 여겨지고 있으며 뉴욕타임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신뢰도 높은 바흐 연주’라는 격찬을 받은 바 있다.
그런 안드라스 쉬프가 2004년부터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유럽과 북미 주요 공연장에서 연대순으로 순회 연주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 해와 올해 시즌에는 이곳 월트 디즈니 홀에서 8회에 걸쳐 연주하고 있다.
한번 꼭 들어보고 싶었던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를 지난 22일 디즈니 홀에서 만났다. 총 8회 연주 중 6번째 콘서트, 피아노 소나타 22번, 23번, 24번, 25번, 26번의 5개 작품을 연주하는 콘서트였다. ‘열정’(Appassionata)과 ‘고별’(Les Adieux)이 포함된 레퍼터리였으니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흔히 피아노 음악의 신약성서로 불린다. 그 유명한 ‘월광 소나타’(14번)와 ‘비창’(8번) ‘열정’(23번) ‘고별’(26번)이 들어 있는 이 전곡 사이클은 지난해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일주일 동안 8회에 걸쳐 완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거장 쉬프의 연주는 ‘영혼’이 느껴지는 연주회였다. 얼마나 경이롭고 경외롭고 경건하던지, 디즈니 홀 전체는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 찼다. 나는 침을 삼키는 소리라도 낼까봐 화석이 된 것처럼 앉아서 들었다.
쉬프는 완벽한 음악적 통찰과 기교로 저마다 다른 다섯 곡을 저마다 특별한 색채로 그려나갔다. 명징한 터치와 섬세한 표현, 지성적이면서도 희열이 넘치는 연주는 청중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열정’에서 보여준 엄청난 격정은 폭발적이었고 ‘고별’에서 보여준 처연한 아름다움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했다. 한 음도 흐트러지지 않는 연주에다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절제됨이 보태진 그의 연주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청중은 환호에 환호를 보냈고 끝없는 기립박수로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쉬프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베토벤이 쓴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는 일종의 자서전입니다. 인생의 각 단계가 그렇듯, 그 안에는 평화와 명상도 있고 격정과 돌풍도 있죠. 그런데 이 자서전을 들여다보면 전 인류의 이상과 고뇌가 보이는 게 기막히죠. 한 인간이 그렇게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건… 문학으로 치면 셰익스피어에 비견할 만합니다”
디즈니 홀에서의 안드라스 쉬프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사이클은 내년 3월25일(7회)과 4월1일(8회)에 끝난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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