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이홍기 특파원 = 일본은 미국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지 최근 세계 경제를 동시 불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을지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선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일본 언론들은 미국의 선거전 소식을 연일 소상하게 전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제2의 경제대국답게 역시 관심은 경제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언론들도 새 정권이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를 주목하고 있다.
금융위기의 무풍지대인 일본도 금융불안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주가 폭락과 엔화 초강세로 고전하고 있다. 그동안 경기회복을 견인해온 수출산업이 해외 수요 감소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데다 엔고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최대 시장인 미국 경제의 회복이 자국 경제의 회복으로 직결되는 만큼 후보들이 내놓는 경제 정책 등 현재의 금융위기 극복 방안 등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미국 경제가 잘 나가던 시기에는 일본 경제는 물론 미일 관계 전반도 순조로웠다는 점에서 경제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중 누가 당선이 되더라도 차기 대통령은 금융시스템의 정상화와 경기회복이라는 난제에 최우선적으로 매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두 후보가 사상 유례가 없는 금융위기를 맞아 뚜렷한 처방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불안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 위기의 발단인 주택가격 하락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어 경기침체가 길어질 경우 재정 악화로 공약을 실천하려 해도 재정적 여유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각종 여론 조사결과 크게 리드하고 있는 오바마 후보에 대해서는 금융위기가 심각한 상황으로 확산되면서 지지율이 급등하는 등 금융위기가 ‘우군’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정책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조지 부시 정권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의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도 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최근 사설에서 두 후보가 대공황 이후의 심각한 위기라는 점은 모두 인식하고 있으나 정책은 불충분하다면서 오바마 후보의 경우 정부에 의한 규제강화와 중류·빈곤층의 감세를 주장하고 있으나 정부지출 확대만으로는 진보 진영의 ‘큰 정부론’의 재현에 불과하다는 걱정도 있다고 꼬집었다.
신문은 그러면서 지난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권 이후 규제완화와 자유경쟁이라는 시장만능주의를 통해 구가해온 번영이 이번 금융위기를 폭발시켰다면서 30년 지속돼온 ‘레이건노믹스’의 시대가 종언을 고함에 따라 차기 정권은 새로운 자본주의의 모델을 구축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미일 양국 관계에 대해서는 튼튼한 동맹관계를 축으로 한 기존 관계에는 기본적으로 별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본에서는 그동안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면 미·일 관계는 걱정이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실제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때는 부시 대통령과의 돈독한 개인 친분을 통한 ‘밀월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이후에도 우호 협력적인 관계를 지속해왔다.
이번에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과거와 같은 ‘일본 때리기’의 재현 등 관계 악화 요인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다. 오바마 후보는 아직까지는 대일 관계에 대해 이렇다 할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 외교의 최대 현안인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 미국의 협조 여부는 계속해서 대미 관계의 중요한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새 정권이 납치문제를 북일 양자 문제로 치부한 채 대북 관계 개선에 나설 경우 양국간의 관계에 금이 갈 가능성도 있다.
일본에서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최근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단행했을 때 미국에 대해 상당한 배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이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와 전화 통화에서 미국은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말로 간신히 달래놓은 상태다.
또한 미·일 양국간에 합의돼 오는 2014년까지 이전을 완료하기로 한 오키나와(沖繩)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문제를 포함한 주일미군 재편이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는 점도 양국 관계를 불편하게 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lh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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