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가는 길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는데 전화가 울린다. 도착한 주일 저녁에 집회 일정이 잡혔다는 전화다. 아마도 모든 일정이 이렇게 급하고 바쁘게 돌아갈 것 같다. 한 달이란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올 수 있을까.
자정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게이트 앞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드디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부러 잠을 청하면서 가려고 늦은 시간을 택했는데 정신이 너무 맑아지면서 수첩을 꺼내들고 뭔가를 끼적이기 시작했다. 한국 가서 제일 우선순위로 해야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들의 명단을 적고 낮에 인터넷에서 뽑아온 서울 지하철 노선표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다.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는 지하철 노선표가 지난 9년의 시간을 초월하고 있는 듯하다. 기껏해야 1, 2, 3호선을 타고 다녔던 내가 8호선까지 뻗어있는 지하철을 보니 노선표만 봐도 벌써 현기증이 난다.
그리고 수첩에 하고 싶은 일과 먹고 싶은 것을 하나씩 쓰고 있었다. 정말 내가 봐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낙서들이다. 떡볶이, 순대, 오뎅, 만두, 튀김, 호떡, 김밥, 붕어빵, 국화빵, 지하철 샌드위치… 나이가 40을 향해 달려가는데 아직도 철부지 같이 먹는 것 타령이라니 쓰던 것들을 하나둘씩 지우며 나에게 주어진 이렇게 귀한 시간을 어떻게 지혜롭게 쓸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담임목사님의 마지막 당부 “민아 집사님, 초심을 잃지 마세요”라고 하신 말씀이 번뜩인다. 초심. 한국을 가는 진짜 이유가 바로 나의 초심인데 벌써 그것을 묻어두고 개인적인 볼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나에게 ‘김 민아, 너 어디 가니? 너 왜 한국 가니?’
책을 낸 것도 방송을 한 것도 난 한 가지를 생각하고 한 일이다. 한국의 시청각장애인협회 때문에… 한국에도 승욱이와 똑같은 시청각 장애인들이 있다는 것을 한국에 알리기 위해 또 그분들을 조금이나마 도우러 가는 것이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만나고 듣기 위해 가는 것이다. 장애인들의 현실이 어떤지를 보기 위해서.
하나님과 약속을 하나 하고 기도를 마무리하니 어느새 비행기가 활주로로 내려앉고 있다. 피곤한 것보다 어깨에 자신감이 단단히 들어갔다. “그래, 해 보자, 할 수 있다.”
걸음걸이도 어찌나 씩씩한지 군인 같이 척척척 걸어서 입국장을 통과~~ 당연히 남편이 이른 새벽에 나왔을 거란 생각으로 멋지게 게이트를 나갔는데 스무 발자국이나 저벅저벅 걸어 나와도 아무도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네? 어럽쇼? 부랴부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방금 일어난 목소리로 “어? 공항? 6시30분 도착이라며? 1시간이나 일찍 왔네? 지금 나가~~” “이런… 작년 시아버님 때문에 한국 왔을 때는 비행기 도착시간 3시간 전에 나와 있더니 이건 뭐라?”
공항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 처량하다. 택시 아저씨는 번갈아가면서 “아가씨, 택시 타실래요?” 3분에 한 명씩 와서 묻는다. 처음에는 귀찮았는데 그 ‘아가씨…’라는 말에 괜히 우쭐하다. 아직도 날 아가씨로 봐주다니. 공항에 앉아 있으니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가족이 상봉하는 모습, 연인이 만나는 모습, 바이어 마중을 나온 모습, 여행사 직원들이 손님을 맞는 모습 그중에도 연인이 아름답게 재회하는 모습이 제일 예쁘다. 이른 새벽인데 한 남자가 안개꽃 한 다발을 들고 공항에서 나오는 여자 친구에게 전하는 모습이 너무 부럽고 예뻐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남편에게 꽃을 받아보면 얼마나 좋을까’
민아 아줌마의 한국 이야기 다음 주부터 계속됩니다. 기대하세요~~~~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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