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개꿈
새해 벽두부터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조만간 미국이 붕괴돼 동서남북으로 갈기갈기 찢긴 후 중국, 멕시코, 일본, 러시아, 유럽의 세력에 예속될 것이라고 러시아의 이고르 파나린 교수가 예견한 것이다.
올해의 토정비결이나 중국식당의 ‘포춘 쿠키’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뚱딴지 같은 소리라고 일갈하고 무시할 수도 있지만,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할까에 잠시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파나린은 경제침체와 도덕적 가치관 상실에서 미국 종말의 이유를 찾았다. 하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와 윤리적 위기보다 더 큰 문제는 보다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사라지게 만든 미국의 교육제도라는 것을 간과했다.
무한경쟁 시장 교육에 학생들을 내팽개치고 교사와 학생간의 인간적인 대화를 끊어버리고, AP와 IB 프로그램을 확장해 랭킹 올리는 것을 학업목표로 삼아 결국, 명문대 진학과 돈벌이가 인생의 최고목표라고 부추기는 교육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예술과 인문학을 바탕으로 하는 인문주의 전통을 고수하며 지속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여 진정한 지식인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유럽식 교육에 비해, 미국의 교육은 과학·기술·스포츠·심리 치료술 등 실용성을 추구하는 교육이다.
이것의 문제는 ‘에그헤드(지성인)’ 양산에 그친다는 것이다. 즉, 공장에서 나온 생산품과 같이 규격화되어, 창조적인 생각이나 비판 정신이 결핍된 전문가 또는 단편화된 지식이나 세분화된 기술만을 습득한 기능공을 찍어내는 것이다.
스페인의 문화 이론가 호세 오르테가 가세트는 인간을 일반대중과 지식인으로 나누었다. 대중은 자신의 욕망 채우기에 급급해 현재도 미래도 없는 순간 순간을 살아가며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무기력이다.
이에 반해, 지식인은 형이상학적이며 비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인간형이다. 그러나 소설가 소울 벨로우가 날카롭게 지적한 ‘쓰레기 문화의 원산지, 천박한 문화의 왕국’ 미국에서는 지식인이 대중과 별로 다르지 않다.
최근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욕심이 파생시킨 월스트리트 몰락에서 보여 주었듯이 그들은 돈과 섹스의 속물 근성에 함께 빠져있다.
미국 교육은 지식인 생산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 교육을 거친 사람들은 미국을 다양성과 상상력 결핍증 환자로 만들었고, 모든 것을 규격화된 사회로 변질시켰다.
그 속에는 데이빗 리즈만이 ‘고독한 군중’에서 말하는 타인 의존증에 걸린 사람, 크리스토프 라쉬의 ‘나르시시즘 문화’에서 묘사하는 불안 초조에 빠져, 시끄럽고 음탕하고 자기과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릴 뿐이다.
스탠포드대학은 1988년 필수 교양과목인 호머, 플라톤, 단테, 토마스 모어 등을 읽어내는 ‘문화와 역사’ 강좌를 선택으로 바꾸었다. 작은 변화 같아 보이지만, 이후로 각 대학은 인문교육을 뒤로하고 기술과 기능 중심 교육을 가속시켰다.
당시 교육부 장관이던 윌리엄 베네트는 “이것은 퇴화다. 도대체 대학이 무슨 짓을 벌이려 하는가”라고 꾸짖었지만 대학 측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경제침체, 중동분쟁, 윤리적 혼돈 등 우리가 겪고 있는 최근 상황들과 같이 뿌리 채 흔들어 대는 터전에서 버틸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개혁 그 자체보다도 개혁의 과정”이라고 주창하며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한다”는 레닌의 말을 인용했다. 죽어가는 인문교육의 부활이 다시 꿈을 꾸게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이 개꿈이 아니기를 바랄 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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